그저 어린 물고기에 불과했던 우리에게 어머니가 주신 비늘은 소금기 가득한 바닷물을 헤쳐 나가는데 굉장히 유리하게 작용했다. 간혹 육지 근처의 바다에서 만날 수 있는 털이 달리고, 사지를 흔들어 헤엄치는 인간이라는 종이 바닷물에 얼마나 취약한 피부를 가진지 생각해보면 더욱 절실히 다가왔다. 어머니는 우리가 자극적인 바닷물에 연한 살결이 상하지 않도록 비늘을 마련해 주신 것이다. 언젠가 깊은 심해에 멋모르고 들어갔다가 불 밝히고 숨어있던 아귀의 공격을 받아 꼬리지느러미 쪽 비늘 몇 점이 떨어져 나갔을 때 그것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느낀 바 있었다. 우리에게 비늘을 주신 어머니는 정말로 감사한 존재다.
우리가 조금 자랐을 때 어머니는 우리를 또래의 물고기들이 잔뜩 모여 더 빨리 헤엄치는 법, 플랑크톤 따위를 잽싸게 빨아들이는 법, 자연산 갯지렁이와 양식 갯지렁이를 구분하여 인간에게 낚이지 않는 법, 돌고래와 상어를 구분하는 법 따위를 배우는 곳으로 보냈다. 거기에 있는 어른 물고기는 우리의 비늘이 더 강해질 수 있도록 훈육시켰다. 웬만한 파도에도 비늘이 벗겨져 나가지 않게, 어설픈 아귀의 이빨에 비늘을 잃지 않도록 말이다. 우리는 더욱 강한 비늘을 갖게 되었고, 더 안전한 존재가 되었다. 그 어른 물고기, 아니 선생 물고기라 해야하나, 역시 정말로 감사한 존재다.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우리는 군집생활을 시작했다. 이미 튼튼한 비늘을 가지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모두 똑같이 빠른 속도로 헤엄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보다 어린 치어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의 어머니처럼 약한 물고기들이 도망갈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 거대한 물고기의 형태를 이루고 바다를 헤엄쳐 다녔다. 우리의 비늘은 시간이 갈수록 딱딱해져 갔고, 더 이상 어린 시절 짠 바닷물만 피하는 것이 목적이던 시절을 잊을 수 있었다. 우리는 강했다. 비늘은 분명 우리를 보호하고 있었다. 비늘을 이렇게 단련시켜준 나의 공동체야 말로 실로 감사한 존재였다.
치기 어린 상어가 있었다. 그는 상어의 세계에서 외톨이로 살았다. 무지하고 멍청한 그 상어는 곳곳에서 사고만 치고 다녔고, 상어의 룰(Rule)을 지키지 않는 그 상어가 다른 상어와 함께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우리역시 그 상어의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난, 며칠 전 고래에게 덤비다 분홍빛 영광의 상처를 코에 입은, 그 상어의 이야기 말이다. 우리는 잔뜩 수를 모아 상어를 혼내 준 흰 수염고래보다 더 큰 물고기의 형태를 만들어 냈다. 은빛 비늘은 바닷물을 통해 들어온 햇빛에 난반사되어 상어의 눈을 어지럽혔을 게다. 놀랍지? 무섭지?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오산이었다. 교육받지 못한 상어는 우리의 '크기'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전속력으로 우리를 향해 돌진했고 우리의 중심부로 파고들었다. 눈에만 그렇게 보였을 뿐 실체가 없는 '우리의' 물고기는 곧 허상이었다.
상어의 이빨은 강했다. 동료들이 한 번에 대여섯 마리씩 상어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리의 피와, 우리의 비늘과, 우리의 살점이 바닷속에 흩어져 갔다. 도망쳐야 했다. 우리는 잽싸게 분산하여 목숨을 건지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련해온 딱딱한 비늘은 우리가 '다른' 방향으로 몸을 트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비늘은 우리의 몸을 '한쪽' 방향으로만 고정시켰다. 어머니께서 달아주신 모양대로, 선생 물고기가 가르쳐 준 방향대로, 군집생활에서 배운 일사불란한 형태대로 우리가 움직이도록 하였다. 우리가 상상하는 어떤 형태로도 움직일 수 없었고, 결국 경직된 우리는 상어의 입속으로 통째로 들어가게 되었다. 비늘은 우리를 지켜주기는커녕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었던 것이다.
*
물고기가 되는 꿈은 끔찍했다. 상어의 이빨이 아직 엉덩이에 닿아있는 것 같다.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왔다. 이미 아버지와 어머니는 식사중이셨다. 나는 아버지의 핀잔을 들으며 식탁에 앉았다. 아버지가 TV뉴스에서 나오는 폭력시위를 보고 한 말씀 하셨다.
"나라가 위기인데 저게 무슨 짓이야. 하여튼 가정에서, 학교에서, 군대에서 나라사랑하고 민족을 아끼는 법을 배워야지. 이 무식한 녀석들."
나는 잠자코 식탁을 내려 보았다. 비늘째 구워진 고등어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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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직된 사고는 우리를 파멸시킨다.'
읽기 전에 제목에서 생각해보고,
읽고 나서 다시한번 제목을 생각해봅니다.
조금 더 은유적인 제목을 쓰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ㅠ
일변도로 움직여야하는 물고기도 무섭지만
룰을 무시하는 상어도 무서운 존재군요
포인트를 잡아주셨네요. 상어도 '규율화'되고 '딱딱한' 집단이라면 오히려 위협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문득, 최승호 시인의 '북어' 가 생각나네요.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으아- 3시다 3시 ㅠ_ㅠ
그러고보니 '물고기' 뿐만 아니라 주제 의식에서도 조금 유사한 면이 있는 것 같네요. 역시 예리한 고3의 눈이란...
경직된 사고는 아마도 잘 변하지 않는 부분이지, 사람마다 경직된 사고의 영역이 있을 것이야. 나도 나만의 경직된 사고의 부분이 안변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너도 느끼고 있을 테지만 변화의 바람이 느껴진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이 각자의 판단조차 언론이나 대중매체, 우리가 흔히 느끼는 대세에 의해서 강력한 영향을 받고 있다. 자, 어떻게 할 것인가? 대세대로 그냥 흐를 것인가, 아니면 자기만의 스타일을 기존의 전통을 이어갈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각자의 판단, 느낌, 생각, 혼란 뒤의 결과에 맡기겠다. 정답이 있으면 한번 말해다오... 미안하다 무리한 부탁을 해서... 이 시간대에 드는 생각이란 대부분이 부정적일 수도... 아마 장마기간이라 그런가봐 ㅋㅋㅋ
흠. '경직된' 사고라고 내가 지칭한 것은 우리도 모르게 내면화 되어 있는 일종의 상징 권력과도 유사한 것이야. 비판의 여지가 없게 하는, 다른 생각 자체를 하지 않게 하는 그런 것. 이것은 어쩌면 이 사회를 '유지'시키는 데는 기여할 지도 몰라. 그러나 사회를 '진보'시킬 수는 없겠지. 이는 전통이 아니라 오히려 지배장치에 불과하다고 봐. 쩝.
기존의 전통이 아니라 기존의 시스템으로 정정할께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