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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포스팅한 「추격자」감상평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였다. 거기서 이미 ‘명백한 인과관계 없는 살인’이라는 것이 영화를 통하여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야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을 본 것은 실책이다. 저런 식의 살인에 대한 이야기는 이 영화 전반에 흐르는 정서에 비하면 그야말로 곁다리에 불과한 것이었다.
 

복수는 나의 것


에노키즈의 살인은 근본적으로 메말라 있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배신감으로, 어떻게 보면 인간관계에 대한 불신으로, 어떻게 보면 세상에 대한 패배감으로 살인을 벌이는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살인은 철저히 ‘메말라’ 있다는 데서 동질성을 찾아볼 수 있다. 모든 살인 장면, 정사 장면을 시종일관 건조하게 보여주는 촬영 기법은 결코 옛날 영화라서가 아니다. 누구를 죽이든, 누구와 섹스를 하든 에노키즈의 눈은 흔들리지 않는다. 어린 시절 배를 빼앗기는 아버지를 보면서도, 결혼하기 위해 자

하루를 죽이다
신의 부모를 만나러 온 여자와 함께 부모에게 그녀의 임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의 눈은 흔들리지 않는다. 모든 것을 초탈해버린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소한 일들을 결코 놓치지 않는 그가, 살인을 한 후 교묘한 위장 투신자살을 꾸미는 그가 도인이라도 된 것처럼 마음에서 이미 속세를 버리지는 않은 것이다.

그는 살인과 섹스에 집착하고 있지 않다. 마치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인 것처럼 해치운다. 살인에 대한 망설임도 없고, 살인 후의 죄책감도 없다. 섹스를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습도 없으며, 무의미한 섹스 후의 허무감도 없다. 도덕, 법, 윤리? 어쩌면 그에게 폭력은 이들과 동일한 범주일지도 모른다. 같은 선상에 올려놓고 이것이 법이고, 이것이 도덕인양 살인과 섹스를 저지르는 것이다. 철저하게, 지독하게 메말라버린 인간만이 가능한 일이다.


그가 언제부터 메말라버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실 그게 언제였든 관계없다. 감독이 영화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지금-여기다. 세상 모든 일은 통시적으로 보면 어떻게든 해답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당장 일이 닥친 순간에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의 메마름이 단지 정신 나간 살인마를 설명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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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를 유혹하는 며느리, 그런 며느리에게 다른 남자를 붙여주는 시아버지, 모든 것을 알고도 속으로 썩이고 살 뿐인 어머니, 여관방에서 벌어지는 손님과 성매매 여성의 정사를 훔쳐보는 노파, 여관을 걸고 만나는 중년의 남성과 젊은 섹스파트너를 두고도 에노키즈와 또다시 정사를 벌이는 하루, 이들은 어디선가부터 인간적으로 서서히 메말라가고 있다. 매 순간에는 열정에, 격정에, 분노에 시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감정은 ‘순간’일 뿐 결코 ‘영원’이 아니다. 잠깐의 감정이 휩쓸고 지나가면 말라버린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말라버리는 것이다.
 

이 영화는 1960년대 일본에서 실제로 벌어진 살인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68혁명 즈음에 벌어진 일련의 반체제운동은 좌절당했고 이후 일본은 차근차근 고도자본주의사회로 진입했다. 결국 1979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세상과 그 인간군상은 지금은 더 ‘발전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당시에 서서히 메말라가던 인간들은 이제 사막처럼 변해버렸다. 유영철이 나오고, 혜진이와 예슬이가 죽은 것은 어쩌면 「복수는 나의 것」에서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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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이 사막화되어버린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살인과 섹스가 앞서 이야기한 고상한 정의와 같은 반열에 올라서버린 사람들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슬픈 것은 이런 사막에서의 ‘죽음’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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