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광우병, 대통령 등으로 인해 시끄럽다. 나도 광우병이나 대통령에 대한 글을 써보려 했으나 앞서 날카로운 시선과 해박한 지식, 객관적 자료들을 이용하여 좋은 글을 쓰신 칼럼니스트, 지식인, 블로거들이 많이 있기에 글을 읽고 댓글을 다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촛불집회에는 참가하려 했으나 파리목숨과 같은 비정규직 학원강사의 처지라 마음은 거기다 얹어 놓았다. 시간이 나면 나도 나가볼 생각이다.
이번에 할 이야기는 친일인사명단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그저 "대단하다"고만 알고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번에 포함되었다. 박정희 같은 인물이야 일제시대만이 아니라 그 이후의 삶의 행적을 봤을때도 더할 나위없이 말종이기에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애국가의 작곡자 안익태, <시일야 방성대곡>을 쓴 장지연 등은 꽤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요즘 국사, 근현대사 교과서에는 어떻게 수록되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초등, 중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아마 5~6차 교육과정으로 기억된다.) 일본인들의 방해공작을 무릎쓰고 <한국환상곡>을 무대에 올린 진정한 애국자 안익태, <시일야 방성대곡>으로 민족의 혼을 토해낸 장지연 정도로 가르쳤다. 그야말로 대한의 아들들(별로 이런 표현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요, 민족의 별이었다.
그러나 눈에 띈 사건들을 제외한 이들의 행보는 그렇게 탐탁치 않아 보인다.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한 당당한 모습과 동시에 보인 그들의 이중적인 행태는 현대의 한국인들을 납득 시키기엔 역부족이다. 특히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국제적으로 드러난 중국의 민족주의나 전부터 문제가 되어온 동북아시아 각국의 역사관을 생각해 볼 때 "친일"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좋은 시각으로 바라보기에는 역시 문제가 생긴다.
국어교육을 대학에서 전공하면서 미당 서정주의 친일시나 많은 문학 작가들의 친일 작품을 접하게 된다. 특히 서정주의 경우에는 그 자신의 뛰어난 문학적 역량에도 불구하고 가미카제 특공대를 미화하는 시나 해방 이후 군사독재 정권에 아부하는 시들을 써내 아쉬움을 자아냈다. 마치 이문열의 경우처럼 엄청난 글쓰기 능력을 가졌음에도 진정한 시대가치, 정신을 읽어내는 철학, 사상의 부족으로 더 위대한 문학 작품을 생산하지 못하는 것과 유사하다 할 수 있겠다.
언젠가 꽤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 강연에서 듣고와 해준 이야기가 있었다. 그때 강사가 한 이야기라는데 벌써 두사람을 거친 것이니 정확하게 옮길 수는 없지만 내용은 대충 이러하다.
물론 이 이야기를 대통령이 며칠전에 친일인사명단과 관련해서 내뱉은 헛소리(균형? 시소나 평균대는 사용해봤는지 모르겠군...)와는 분명히 다른 맥락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결과가 중요한 것 아니냐, 뭐든지 잘했으면 봐주자 이런 식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결국 친일인사명단 제작과 배포,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역사적 진보의 과정이다. 분명히 국가에 대하여, 민족에 대하여,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배신의 행위를 한 사람들의 행적을 제대로 알고 쉽게 그들을 미화하거나 잘못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물론 해야하며 그래야 한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래서, 친일이다 이거지?" 라는 반응은 안된다는 것이다. 어제부터 서정주는 친일파, 오늘부터 장지연은 친일파, 내일부터 안익태는 친일파라고 해서 진정 현대 한국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역사적 "사실"을 알았다는 것 정도?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진실"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도움되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도움되려면 이들의 행적을 기록하되 당시의 상황이나 주변 여건, 어떤 이유로 이들이 소위 변절을 하였는가, 어떤 의도로 이들이 소위 친일시, 정권에 아부하는 행위를 하였는가를 함께 밝혀야 할 것이다. 그러면 당시 "위대한" 인물이었던 사람들이 가졌던 먹고 싸는 것과 직결되는 고뇌, 그리고 거기서 내렸던 그릇된 선택, 이 선택이 불러온 사회적 파장 등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이 그들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물론 조중동이나 성추행당, 2MB 등은 충분히 그런식으로 이용해먹으려 들겠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확고한 역사의식으로 반대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친일이다, 아니다라는 이분법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을 넘어 역사적 사실, 진실을 통해 현재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현대의 위정자들이 보이고 있는 친미의 작태에 대해 지금보다 더 냉철하게, 더 분석적으로 차후에는 이런 행위가 가져오게 될 파장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각을 많은 국민이 갖게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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