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 물이 가득 찼다. 알고 있었지만 비도 그칠 것 같고 해서 그냥 일하러 갔다. 배수구의 능력(?)은 좋으나 예전에 포스팅(2008/06/27 - [잡설] - 옥탑방의 로망, 파라솔을 설치하다!)했다시피 옥상에 흙(?)이 많이 있어서 흙을 거르기 위해 설치한 거름망에 이물질이 껴 물이 차는 경우가 많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학원에서 수업을 마치고 8시에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서 그리로 갈까, 하다가 잠시 접속한 인터넷에서 아래와 같은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나 비만 더 안 오면 되는 것 아닌가, 하면서 의연하게(?) 일어서려 했으나 바로 발목 잡혔다.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후배 녀석은 "군대처럼 열심히 삽질 하슈!"라고 놀린다.
제길, 우리집엔 삽 같은 것도 없단 말이다!
일단 복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호주에서 산 비치팬츠를 꺼냈다. 여름이 왔음에도 바다는 커녕 물구경 한 번도 못해서 늘 서랍 안에서 썩어가고 있던 녀석이다. 결국 처음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뭐, 장맛비도 물은 물이니까 써준다. 녀석도 그렇게 상심해하지 않으리라 본다.
그리고 옥상으로 나갔다. 물이 찰랑찰랑 거리고 있었다. 지금 조치를 취해두지 않으면 분명히 물이 넘어 들어올 것이다. 집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겠지만 방 밖의 신발들이 계단을 타고 아래로 떠내려(?)가 버릴 위험이 있었다.
2008년 한국에서의 최초의 물놀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배수구가 제대로 막혔는지 물의 움직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스티로폴 박스등도 떠다닌다. 물은 발목 위로 찰랑찰랑 올라와 있었다.
옥상 구석으로 가서 배수구가 어디있는지 살펴보았다. 너무 캄캄해서 보이지 않았다. 물에 손을 집어넣어 옥상 바닥을 한참 더듬은 끝에 무언가가 잔뜩 걸려 있는 거름망을 찾을 수 있었다. 삽이 없어서 대용으로 갖고 간 부서진 쓰레받기로 열심히 긁어낸 후 거름망을 들었다.
거름망을 꺼내자마자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물이 빠져나간다.
바닥에 깔린 흙이랑 같이 흘러들어가는 경향(?)을 보이는 듯 하여 쓰레받기를 이용해 녀석의 진로를 적절히 잘 수정해 주면서 흙은 치우고, 물은 밀어넣었다. 이러는 와중에 비가 온다. 제길, 어쩐지 군대에서 배수로 작업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십여분간의 쇼가 끝나고 옥상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일단 거름망을 제거해 버렸으니 오늘 밤에 물이 넘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예전에 살던 사람이 쌓아둔(?) 흙더미가 영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설마 그게 배수구를 타고 내려가지는 않겠지, 한다. (걱정된다.)
옥탑방에 살면서 비오는 걱정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옥상에 찰랑찰랑 물이 차 있을 줄이야. 저번에 비가 왔을 때는 그래도 자연건조(?)가 되었는데 오늘은 '물폭탄'운운 하는 기사들을 봤을 때 반드시 넘어 들어올 것 같아서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오늘 밤에 비가 많이 오더라도 별 걱정없이 잘 수 있게 되기는 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도 집 주변을 둘러보고 미리미리 대비를 해두시기 바란다. 별 생각없이 있다가 쓸데없는 돈을 날리게 되는 안타까운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심하면 인명 피해까지도 날 수 있으니 조심하자.
그리고 어제, 오늘 내린 비로 인해 피해를 입은 많은 분들의 집이 곧 복구되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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