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의 투표율에 40.1% 득표율, 대충 계산해봐도 서울시민의 무려 6% 남짓한 지지를 받고 당선된 공정택 교육감이 당당한 포부(?)를 밝혔다. 기사를 읽고, 뉴스를 본 후 드는 감정은 하나다.
"나이든 것이 다행이다!"
고등학교까지 스트레이트로 2001년 2월에 졸업한 것이 이렇게 다행스럽기는 처음이다. 내가 1982년에 태어난 것에 대하여 부모님께 너무 감사하다. 군대에, 학비 벌기 위해 했던 휴학에, 맨몸으로 떠난 1년 호주 체류까지 8년째 대학을 다니다 이번 학기에나마 졸업하게 된 것도 너무 다행이다. 다시 파릇파릇한 고등학생이 되어보고 싶다는 둥, 아무 생각없이 공만 차면서 보낼 수 있었던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둥 하는 소리는 공정택 교육감, 이명박 정부 하에서는 결코 내 입에서 내뱉어질 일이 없을 것이다. 이유는? 교육감 되자마자 쏟아(?)내기 시작한 그의 멋진 교육철학 덕이 아닐까 한다."우리 나라도 이제 고교 경쟁에 불을 빨리 붙여야 할 때가 됐다!"
고등학교끼리 경쟁을 붙인다는 말은 결국 서열화를 시키겠다는 이야기다. 단위학교 성적 공개까지 천명했으니 서울시내 고등학교가 1등부터 꼴등까지 한 줄로 서게 된다. 서울시 교육청의 정책은 곧 전국 시,도 교육청의 정책이 됨은 지금까지의 사례로 보아 불보듯 뻔한 것이니 전국의 고등학교가 한 줄로 서게 될 것이다.
어쩌면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까마득한(?) 옛날처럼 교복에 줄을 그어서 일류, 이류, 삼류를 나누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일류고-일류대의 줄이 다시 부활될 것이다. 공정택 교육감의 의도(?)대로 초등학교부터 경쟁(!)을 시킨다면 일류초-일류중-일류고-일류대의 완벽한 라인업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면 유치원부터 경쟁을 시작하겠는데? 유치원이 경쟁하면 유아원, 유아원이 경쟁하면 놀이방에서부터? 어쩌면 엄마 뱃속에서부터 '태교경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뒤처진 학교는 도태시키니, 뒤처진 엄마 역시 도태되어야 할 것이다.
"영어 수업이 가능한 분위기에서 영어몰입교육 할 수도 있다"
공정택 교육감은 영어몰입교육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어몰입교육을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다. 적어도 3~4년 정도는 걸려야 학교에서 영어로 수업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영어몰입교육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을 뿐이다.이야기한 적 없다고 말을 시작했지만 난독증이 아닌 한 누가 읽어도 영어몰입교육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영어몰입교육을 하든 안하든 학교에서 영어로 수업하는 것을 가능케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그 때가면 "거봐라 영어 몰입 교육해도 되지 않느냐?"라고 나오리란 것은 불보 듯 뻔하다. 물론 3~4년이 지난다 하더라도 영어 외의 과목을 굳이 영어로 배울 필요성은 하등 없지만 새 교육감님의 머릿속에는 영어로 가득 차 있는 모양이다. 그나마 "오륀쥐" 신공을 안 보여 준 것이 다행일 따름이다.
쑥 들어가버린 줄 알았던 영어몰입교육의 망령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시범학교를 지정해 영어몰입교육을 해보겠다던 교육부는 무려 30여곳의 초등학교가 이미 영어로 수학-체육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도 "자율화 조처"에 의하여 학교장이 결정한 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발뺌한다. 이미 영어몰입교육은 국민들의 눈을 피해 시작된데다 교육감마저 잘 만났으니 물 만난 고기 꼴이다. 이것을 사자성어로 수어지교(水漁之交)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잘 모르겠다. 아마 "일찍 초-중-고를 졸업"한 덕택일 것이다.
"전교조, 협상은 하되 양보는 없다"
교원평가제는 지금 바로 시행은 어렵고 교원단체와 논의하고 타협하면서 깊이 있게 연구하는 준비단계를 거쳐 최대한 시행 시기를 앞당기도록 노력할 것 ... (중략) ... 기회가 된다면 전교조 집행부와 만나 잘 협상하고 싶다. 무엇을 양보하겠다는 의미는 아니고 끈기있게 설득하겠다는 말교원평가제에 대한 찬반은 논외로 하자. 교육감은 교원평가제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기 때문이다. 전교조를 언급하고 마치 교육정책운영의 파트너인 양 말하고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협상한다고 했는데? 그렇다. 협상한다고는 했다. 그러나 '양보는 없다'고 하신다. 양보가 없는 협상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교육감은 '협상'이라고 쓰고 '협박'이라고 읽는 모양이다. 요즘 정부에서 늘 하는 짓이 '섬기다'라고 쓰고 '밟는다'라고 읽는 것인데, 교육감 또한 같은 짓을 하고 있다. 양보 없는 협상을 하려면 차라리 협상을 안하는 것이 옳다. 우리는 위와 같은 말을 '립서비스'라고 부른다. 하지만 교육감은 지금 정부처럼 최소한의 립서비스의 룰도 지킬 줄 모르는 것 같다. 협상한다고만 하면 될 것을 굳이 '양보는 없다'라는 말을 덧붙여 앞의 '협상'이란 두 글자의 의미를 완전히 퇴색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교사에 대한 대우가 저러한데 학생들에게 보여줄 시교육청의 위용(!)은 더욱 위풍당당해질 것이다. 감히 밤에 야자를 빼먹고 나와 촛불시위를 했던 고등학생들이나 불법시위를 선동하는 문자를 보내던 중학생들은 모조리 교육청의 철퇴(?)를 맞게 됨은 뻔한 일이다. 학생의 본분은 누가 뭐래도 '공부'고 '경쟁'이며 '좋은 대학 가기'니까 말이다.
교육감님,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정말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다.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은 사회로 곧 나갈 예정이지만 그래도 초등학교 때는 열심히 뛰어놀 수 있었고, 중학교 때는 모든 것일 잊고 공만 차며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개같이 맞아가며 야간자율학습을 했으나 그래도 "우리 학교가 좋지는 않아도 내가 열심히만 하면 대학 간다!"라는 믿음은 있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펼쳐질 미래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지금도 학원이다 과외다 해서 아이들이 밖에 돌아다니는 꼴을 볼 수가 없는데 향후 1~2년 안에 동네에서 공차는 아이들을 보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더 쉽게 볼 수도 있겠다. '일류' 학교에 가는 것을 실패하여 학업을 포기할 80%의 아이들 말이다. 공부, 대학이 아니고선 다른 걸로 먹고 살기가 더욱 팍팍하게 만들고 있으면서 공부 못하고 대학 못 보내는 고등학교를 제대로 줄 세워 주겠다는 교육감의 포부가 무섭고, 또 졸업한 내가 다행스러우며, 아이들에게, 동생들에게 못내 미안하다.
예전에 썼던 '반성문'을 다시 링크한다.
2008/04/18 - [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 반성문 - 특검, 대통령 방미, 소고기, 20대...
덧) 기사를 읽다가 조금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교육감이 도대체 무슨 대답을 한 것인지 모르겠다. 학생 수, 급식, 수학여행과 서울교육청의 '청렴도'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 또 꼴찌에 대해 물었는데 1등을 못했다고 대답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1등병이라도 걸렸나? 설명해 주실 수 있는 분께 댓글을 부탁드린다.
공 교육감은 서울교육청이 청렴도 평가에서 3년 연속 전국 꼴찌(질문)를 기록해 선거과정에서 지적을 받은 데 대해서는 "서울은 학생 수도 많고(?) 급식(?), 수학여행(?) 등으로 1등을 하기에 어려운 면이 있지만 꼴찌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답변)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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