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 중 손꼽히는 것이 <명랑 히어로>다. 두 달 전인가, 토요일에 있던 수업이 없어져 집에서 노닥(?)거릴 일이 있었는데 그때 우연히 보게 된 프로그램이 이 것, <명랑 히어로>다. 솔직히 그 시간대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치고는 워낙 뜬금없는(?)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서 의아해했으나 잠깐 보다보니 그만 푹 빠져버렸다. (지금은 밤시간대로 방영시간을 옮겼다.) 물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김구라의 달변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 그랬을지도 모른다.
전부터 언젠가 이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시사-예능의 결합과 토론 프로그램의 성격에 대하여 포스팅할 계획이 있었으나 이번 방영분에서 갑자기 '토론'이라는 것을 주제로 스스로 방송을 해버리는 바람에 조금 멋쩍기는 하다. 하지만 단순히 '토론'을 다루었다고 해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프로그램의 형식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부족하기 짝이 없는 토론 문화를 일으키는 데 상당한 일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은 여전하기에 한번 글을 풀어본다.
<명랑 히어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은 사실 상당히 식상하다. <라디오스타>의 그 4인방을 그대로 갖다 앉혀 놓고, 김성주, 박미선, 이하늘을 추가한 형태다. 이번주 방영분으로 이경규의 고정출연이 기정사실화 되었기에 총 8명의 진행자 체제로 가게 되었다. 이하늘을 제외하고는 굉장히 많은 프로그램에서 자주 보는 얼굴들이고 김구라-윤종신-신정환-김국진은 특히 <라디오스타>에서 충분히 입담 대결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인기"만 놓고 본다면 상당한 위험부담(?)을 안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묘한 매력이 있다.
<명랑 히어로>는 일주일 동안 있었던 사건 사고들 중에서 하나씩 뽑아 멤버들끼리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밝히는 형식이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다보니 웃음코드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생각보다 굉장히 날카로운 현실 인식이 보이거나 시사 프로그램을 방불케하는 수위의 발언이 나오기도 한다. 그 아슬아슬함은 생각보다 큰 웃음을 주고 있다. 시청률은 별로지만 충성도 높은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는 증거가 여기에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현실인식이나 발언이 어떤 형태로 녹아드는가이다. <명랑 히어로>는 의외로(!) 토론이라는 방식을 택했다. 한 주간에 있었던 뉴스거리를 갖고와 읽어본다는 발상만으로는 아무것도 건질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는지 어떤 사안에 대해서 자연스레 편이 갈리며 논쟁을 벌인다. 물론 웃음을 주기 위한 막말이나 신정환의 말대로 허무맹랑한 예시들도 난무하지만 일견 의미가 있어보이는 이야기를 나눈다. 문제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 '토론'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굉장히 자유로운 형태의 토론을 벌인다. 어떤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며 찬/반을 명확하게 가른 채 이야기를 한다. 박미선과 김성주는 때로는 역할을 바꿔가며 사회자의 위치에 서서 이야기를 이끈다. 김구라의 끝없는 말빨(?)에 논점이 일탈될 것 같으면 적당히 잡아주기도 하고, 이야기거리가 쉽게 나지 않으면 - 물론 작가들이 어느정도 방향을 잡아주었겠지만, - 새로운 화제를 던지기도 한다. 김구라는 자신의 생각을 적당한 예시(?)를 들어가며 상당히 소신있게 말하고 신정환, 윤종신의 경우에도 적극적으로 토론해 참여한다. 말없이 앉아있는 듯한 이하늘, 김국진도 가끔씩 하지만 의미있는 이야기를 남긴다. 몇주째 나오고 있는 이경규의 경우도 논점을 회피하니, 이명박 정부의 대변인이니 하는 소리를 듣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출연자들의 맹공에도 상당히 균형잡힌 보수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렇다고 다른 출연자들이 진보적이라는 것도 아니다. 이들을 진보/보수의 잣대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필요한 토론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확고하게 캐릭터가 잡힌 사람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곧 우리 사회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앉아 시사적인 문제에 대해서 농담과 웃음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자기와 생각이 맞지 않아도 일단 들어줄 줄 알고, 목소리가 커지기도 하나 자신의 논리가 합당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남의 말에 기가 죽을 줄도 아는 모습은 우리에게 매우 필요한 것이다. 개그계의 대선배라는 '권위'를 등에 업고 앉은 이경규에게 당당히 '까댈' 수 있는 것은, 비록 그것이 설정일지라도, 토론 자리에서는 평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의견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이다.
물론 이들의 이야기들이 어느 정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버리는 경향도 있고, 이야기가 한 쪽으로 몰려 김구라의 압승으로 끝나버리는 경우도 있다. 논점이 일탈되어 원래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던 주제는 산으로 가버리고 잡담을 나누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모습들조차 우리가 평소에 나누는 이야기들에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명랑 히어로>에서는 스스로 이것을 경계하고 조심하려 노력한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샐 것 같으면 잡으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연예인의 신변잡기식의 프로그램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는 충분히 높이 살만한 부분이다. '특별 게스트'라는 이름으로 손님을 불러 앉혀놓았지만 그의 근황을 묻는다거나 새 음반, 새 영화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지금 나누고 있는 이야기 주제에 맞는 발언을 해주기를 원한다. 또, 예능프로그램인데 '토론'방식이 조금 미숙한 들 어떤가? 사람들이 저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는 것을 알고, 김구라처럼 혼자 계속 이야기하면 문제가 되는 것이 느껴지고, 조용히 앉아 있지만 한번씩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이하늘을 보면서 평소에도 조용히 있어서 묻혀버리기 쉬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구나는 깨달음도 얻는다면 100분토론보다도 우리 시청자들에게는 훨씬 의미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기존의 시사토크쇼나 코메디극을 넘어 '토론'이라는 형식으로 새로운 시사-예능 프로그램의 결합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한동안 방송가의 트렌드였던 '리얼'이라는 요소가 극대화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단순한 '리얼버라이어티'를 넘어 진짜 '리얼'하게 세상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서도 웃음과 즐거움을 주는 <명랑 히어로>의 발전을 기대해본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쟈는 남자가, 여자가?" / "으음... 엄마... 그건..." (2) | 2008/07/13 |
|---|---|
| iPod에서 PC로 음악을 가져오자! (2) | 2008/07/10 |
| <명랑 히어로>, 시사+예능을 토론으로 가능케하다 (4) | 2008/07/07 |
| 세계를 울린 여섯 살, <누들> - 언론 시사회에 초대 받다 (2) | 2008/07/01 |
| 전쟁, 그리고 여성에 대한 이야기 - <님은 먼곳에> 제작 보고회 (4) | 2008/07/01 |
http://freesopher.tistory.com/trackback/273
-
음... 지나가다 잠깐 10분정도 본게 다라서 잘 모르겠지만 읽어보니 괜찮은 프로그램 같군요. 그렇죠.. 사실 토론이라는게 이상하게 우리나라에는 뭔가 겨루는 느낌으로 잘못 인식되는것 같아 씁쓸합니다.. 그건 토론이 아니라 언쟁인데. 서로 안면이 있는 사람들끼리 지켜야할 선을 지키면서 주제에 대한 진지한 자기 생각을 나누는 모습은 100분토론보다도 더 생산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
freesopher
2008/07/07 07:21제가 좋아라하는 프로그램이지요. 예능이다보니 어느 정도 선(?)도 지켜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도 한계가 있지만 오히려 그것이 불편함도 덜고 재미있게 토론을 볼 수 있는 것 같아서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더욱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시청률은 조금 더 올라가줘야 하겠지만 말이죠. 허허;;
-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