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말했다. 예고편만 보고 가슴이 떨려오기는 실로 오랜만이라고. 나 또한 그랬다. 삼국지 이야기를 하면서 술잔을 기울이다보면 날밤이 가는 줄 모르는 팬 중의 한 명이기에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이하: 적벽대전)이라는 네 글자는 충분히 나를 설레게 할 만 했다. 3주만에 쉬는 날을 맞아 <I'm not there>를 보겠다고 광화문에 앉아 있는 두목을 강제로 대한극장으로 보낸 후 <적벽대전>을 보았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엄청난 스케일, 그러나 사람이 없었다
오우삼은 삼국시대를 재현해냈다. 중국인들 고유의 엄청난 과장으로 점철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의 세계를 그대로 그렸다. 80만이면 80만을 다 넣었고, 배가 장강을 뒤덮으면 그대로 덮어 버렸다. 실제로 5만이 싸웠든, 적벽이 배 몇 척 띄우기에 민망할 정도로 규모가 작은 곳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책으로만 읽으며 꿈꾸었던 삼국지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게 만드는 것이 그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해 보였다. KOEI사의 게임 삼국지 시리즈에서 방금 걸어나온 듯한 제갈량(금성무 분), 주유(양조위 분)의 모습은 눈부셨다. 장비는 또 어떠한가? 머리에 빨간 두건만 두르지 않았다 뿐이지 언제나 머릿속으로만 그려왔던 장비의 모습 그대로였다. (물론 관우의 경우에는 조금 에러였다.)
상편에서 최고의 비쥬얼은 누가 뭐래도 '구궁팔괘진'을 재현해 낸 것일 게다.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 약간 삐딱한 시선으로 영화를 보고 있던 나도 찬탄을 금치 못했다. 팔괘진에 갇히면 생문과 사문이 있고 그것을 알면 빠져나갈 수 있다는 데 천하의 지략가 주유와 공명이 함께 펼친 진이니 어찌 이름없는 장수(?) 따위가 살아나가겠는가. 손에 땀을 쥐는 액션은 없지만 그저 '오오'하는 소리가 나오는 장면이었다.
이 외에도 장강을 따라 끝없이 내려오는 조조의 함선들과 적벽에 자리잡은 동오군의 진세 등 볼거리는 수없이 많았다. 역시 돈을 많이 들이면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뛰어난 CG로 눈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그곳에 사람이 없었다.
오우삼이 방점을 찍은 것이 어느 부분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캐릭터들이 죽어있었다. 신야에서 아두를 구해오는 상산 조자룡도 그 '무용'으로만 존재할 뿐 우리가 익히 느끼고 있는 조자룡이 아니었다. 개그 캐릭터로 전락해버린 장비나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용모의 관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기개와 충성은 분명히 보이고 있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Ctrl-X(잘라내기) + Ctrl-V(붙이기) 신공으로 끼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누가봐도 주인공인 주유와 공명도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갑자기 망아지를 낳는데 따라가는 공명이나 거기서 이상한 교감(?)을 느끼는 두 사람은 우리가 알고 있던 주유와 공명이 아니었다. 급기야 앞으로 공명의 "앞으로 적이 되면 어쩌지?"라는 말에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갈 뿐이오." 라고 대답하는 주유의 모습은 유치한 우정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나관중이 그렇게나 깎아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곳곳에서 보인 진정한 난세의 간웅 조조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말만 내뱉으며 조조라는 인물이 갖고 있는 카리스마를 제대로 흐려놓고 있었다. 나중에는 부하에게 "겨우 여인 하나 때문에 이렇게 큰 전쟁을 일으켰는가?"란 말을 들을 정도로 앞서의 모습과는 다르게 갑자기 소교에 집착하는 행태를 보이는 등, 어디에도 우리가 알고 있던 '조조'가 보이지 않았다.
삼국지가 이야기 자체보다는 인물들에 더 큰 매력이 있다는 것은 물론이다. 삼국지를 읽으며 울고 웃는 부분은 낙양이 함락되어서라기보다는 양아들 여포에게 여자 때문에 죽는 동탁에게 있으며, 촉이 멸망해가는 기운이 느껴저서라기보다는 제갈량이 쓴 출사표에 있기 때문이다. 인물이 살아있지 않은 삼국지는 안타깝게도 나에겐 삼국지가 아니다.
차라리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처럼 하는게 어땠을까?
<해리포터>시리즈와 <반지의 제왕>시리즈는 원작을 그대로 살려내는 데 중점을 두었다. 환상적인 세계관을 그대로 살려내고 소설에서 보았던 인물관계와 갈등구조를 그리는 데 힘을 쏟은 작품들이다. (물론 후기의 <해리포터>시리즈는 그렇지 않은 면도 있기는 하다.) 그러하기에 원작 팬들의 성원(?)과 함께 영화 팬을 만드는 데에도 성공했다고 본다. 원래의 이야기, 원래의 인물들 자체가 매력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삼국지는 어떠한가? 일단 동양문화권에는 그대로 먹힌다. 내용에 손을 볼 필요도 없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그대로 가더라도 문제가 없다. 지금 <적벽대전>에서처럼 일단 화용도에서 관우가 조조를 놓아주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 뜬금없이 신야성 전투에서 관우가 사로잡히는 어색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나 이미 동작대 낙성식에서 읊었던 대교-소교 타령을 다시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전혀 비장함이 느껴지지 않는 관우-조조의 대면은 오히려 왜 그는 남아서 혼자 난리를 치고 있는가? 라는 느낌 밖에 주지 않았고, 소교 찬가를 부르는 조조의 모습은 주유-공명이 당연히 이길 싸움을 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적벽대전> 영화 전체의 긴장감 조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전쟁의 승패는 이미 알고 있다. 누구나 조조의 80만 대군이 연환지계에 의해 배가 모조리 불타며 떼몰살 당한다는 결과를 알고 영화를 본다. 어차피 결론을 아는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유와 공명이 얼마나 힘들게 이겼는가, 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조조가 일개 여인을 못 잊어 전쟁을 일으킨데다(그것도 세세히 그려지지조차 않고) 곳곳에서 짧은(?) 생각만 늘어놓고 있는 것은 주유와 공명이 맞서야 할 대상이 마치 멍청이 골리앗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다윗은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짱돌 하나로 골리앗을 쓰러뜨렸으니 말이다. <적벽대전> 상편에서 보여주는 조조의 모습은 이후에 방통이 가세하고, 황개가 몸을 던져 보이는 최고의 지략 싸움이 과연 필요한가 의문이 들 정도다. 그냥 배를 쇠사슬로 연결시키라고 누군가 귀띔만 한다면 생각해보지도 않고 당장이라도 할만한 인물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주유와 공명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난세에서 태어나 숙명적으로 대결을 벌이는 인물이다. 사마휘는 복룡과 봉추 중 하나만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고 했지만 사실 공명에게 대적할 수 있는 인물은 삼국지 전체를 읽어봐도 주유 정도의 사람밖에 없다. 그 두 사람이 망아지 낳는 걸로 친해진 후 마치 오랜 친구인 양 선문답이나 하고 있는 모습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어쩌면 오우삼은 그런 선문답 속에서 둘 사이의 치열한 지략 대결을 그리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마음이 통한 친구. 음악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지음(知音)인가?
동양문화, 그대로 밀고 가자!
영화는 산업이다. 문화산업이다. 특히 <적벽대전>의 경우 돈벌이를 목적으로 만든 상업영화다. 그러나 어설픈 상업성은 영화를 절름발이로 만든다. 화려한 볼거리로 치장했지만 우리가 눈으로만 봐도, 귀로만 들어도 공감할 수 있는 정서가 없다. 충, 의는 허공 속에 메아리치고 있다. 그렇다고 난세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는 간웅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2차 판권 시장까지 생각하면 돈이 되는 것은 역시 서구일게다. 그쪽에 먹혀들어야 돈이 된다. 한국이나 중국같이 불법복제가 판치는 나라에서는 부가가치를 얻어내기가 힘들다. 그래서 삼은 타겟이 미국을 위시한 유럽 국가들이다. 게다가 <페이스 오프>, <미션 임파서블 2> 따위의 헐리우드 영화를 만들다보니 오우삼의 정신세계도 그렇게 변해가나보다. 영화 속에서 그런 모습들이 다분히 보인다. <와호장룡>, <영웅> 등에서 볼 수 있었던 동양의 정서는 없다. 겉으로 슬쩍슬쩍 치장만 해 놓았을 뿐 끝없는 칼질과 창질 뿐이다. 극 전개상 아무런 의미조차 가질 수 없는 주유와 소교의 정사신 역시 마찬가지다. 왜 유비는 아두를 내던지지 않는가? 아동학대에 걸릴까봐 두려워서 그런 것인가? 전장을 헤치고 아두를 구해온 조자룡에게 준 진정한 감동은 아두를 내던지며 외치는 소리, "아이야 또 낳으면 되지만 자룡과 같은 장수는 내가 어떻게 다시 얻겠는가!" 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양의 문화는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 적벽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그 스케일도 스케일이지만 끝없이 펼쳐지는 지략 대결이다. 이런 대결은 팔괘진에 어설프게 말려드는 멍청한 장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적벽대전>에서 삭제된 장소와 공명의 설전과 같은 것이 그 예이다. 싸우려 들지 않는, 지키려고만 하는 자들을 세치 혀로 어떻게 굴복시키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공명의 모습은 영화에 없다. 이런 것이 동양의 문화인데 말이다. 영화에서 죽는 사람은 셀 수도 없이 많이 나온다. 그저 피가 뿌려지고 사람이 창에 꿰뚫린다고 누구도 통쾌해하지 않는다. 그것은 미국의 쓰레기 슬래셔 무비에서 충분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들이 거기서 죽어야 하는가, 어째서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비를 따르고 손권을 따라 조조에 맞서려 하는가를 그려내는 것이 동양의 문화이고 동양의 영화다.
영화에서 굳이 동서양을 나눌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삼국지에서만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기대한다
그래도 겨울에 개봉할 <적벽대전> 하편을 기대한다. 적벽대전의 진수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기에, 조조가 배를 정박시키는 순간은 적벽대전 전체에서 전혀 중요하게 여겨지는 부분이 아니었기에, 진정한 지략대결이 펼쳐질 하편을 기대한다.
서서는, 방통은, 황개는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많이 비판했지만, 사실 진심은 이러하다.
삼국지 팬이라면 <적벽대전>은 그냥 보자. 눈 앞에 그것(!)들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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