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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25 우리는 우리들대로 즐기면 된다 - 무라카미 하루키, <밤의 거미원숭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는 우리들대로 즐기고, 들쥐는 들쥐 나름대로 재미있게 살면 되지 않을까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밤의 거미원숭이>는 소설(小說)이다. 문자 그대로 짧은 글이라 보면 되겠다. 각각의 글들은 모두 소설의 성격을 띄고 있으나 그 분량이 현저히 적어 민망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하루키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을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짧은 단편(이라는 것도 이상한 표현이지만, 달리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은, 사실은 잡지에 광고 시리즈로 쓰인 것이다.

  36편의 단편은 핸드북 크기의 책에 2~3 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실려 있다. 신문 광고 시리즈였으니 글의 내용이 길 리 없다. 각각의 글은 완결된 구조를 갖고 있는 이야기 형식도 있고, 뜬금없는 독백체의 형식을 취한 것도 있다. 앞에서 등장했던 인물, 예를 들면 와타나베 노보루, 가 다시 등장하는 글도 있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무관한 내용의 글도 있다. 기상천외한 내용도 있고,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내용도 있다. 이 모든 작품을 묶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우습게도 36개의 단편이 전혀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광고 시리즈로 사용되었다고는 하나 광고 내용과는 전혀 무관한 글 뿐이다. 몇 가지 뺀 작품도 있고, 책으로 편집하면서 두 작품정도 들어가기는 했으나 일관성이 없는 내용들이라는 점에서 어떻게 광고로 사용되었는지 의문스럽다.

  글은 오랜만에 하루키스럽다고 하겠다. 1995년에 일본에서 출간된 책(한국은 1996년)이니 예전 그의 냄새가 물씬 나는 글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좋다. <태엽감는 새>를 쓸 무렵에 한 달에 한 편씩 광고용(전혀 광고와 무관하지만)으로 썼다. <태엽감는 새>라면 하루키적 글쓰기가 최고로 빛을 발할 때 완성된 대작(?)이 아닌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매력 중 하나는 그의 묘한 서사 방식일 것이다. 우리는 문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낯설게 하기', 중학교 때 배운다, 를 꼽는다. 원래 '낯설게 하기'라는 것은 러시아에서 완성된 개념인데, 항상 경험하기 때문에 일상화되어 익숙해져 버린 사물 혹은 관념을 낯설게 느끼게하여 새로운 느낌을 이끌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보는 문학작품들이 갖고 있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것은 주로 '비유'나 '상징'과 같은 수법을 통하여 나타난다.

  '비유' 혹은 '상징'은 언제나 원관념을 가진다. 원래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 있고, 그것을 '낯설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루키는 다르다. 그가 꺼내는 사물, 관념은 마치 비유와 같아 보이는데, 마치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 같은데 그 실체가 없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나는 너무 난처해서 보초보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말야, 아까 모쇼모쇼가 우리 집에 와서 쿠랴쿠랴를 두고 갔네. 사례라고 하면서 말이야. 난 무척 곤란하다고."
  "괜찮아요, 선생님. 그런 것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보초보초가 말했다.
  "모쇼모쇼는 세무서에 대한 대책으로, 어쨌든 그걸 누군가에게 주어야만 하거든요. 받아두세요. 받아두세요. 그것 꽤 괜찮은 거라구요. 사모님께는 제가 적당히 말씀드릴게요. 눈 딱 감고 그냥 받아두세요."
  그렇게 해서, 나는 지금 쿠랴쿠랴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사용해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다. 이제는 손에서 놓지 못할 것 같다.

  언뜻 보았을 때 쿠랴쿠랴는 '돈'인 것 같다. 그러나 곰곰히 읽어보면 쿠랴쿠랴라는 것이 다른 것이 되어도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사용한다는 것이 뭘까? 돈을 사용한다, 고 하니까 어쩐지 어감이 이상하다. 그렇다면 보초보초는 누구를 의미하며 모쇼모쇼는 누구를 의미하는가? 쓸데없이 머리를 굴려봐야 남는 것이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돈을 사용한다'는 것은 이런 느낌일까?


  이런 것이 하루키의 문학이다. 그가 쓴 장편 소설들은 허황되고, 환상적인 것 같아 보이면서도 상당히 짜임새있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 치밀한 복선도 깔려 있다. 그러나 그것들 하나하나가 모두 실체와 맞닿은 상징이나 비유가 아니기에 어처구니 없어 보인다. 내용이 없어 보이고, 깊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매력으로 꼽는다.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는 일상에서 벗어난,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해보기 위해서다. (이것을 문학의 '간접체험'이라고 한다.) 하루키의 문학은 그런 점에서 매력이 있다. 누구도 미리 정해놓은 것 같지 않은, 우리를 둘러싼 갖가지 현상에 이끌려가는 우리네 삶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운명은 있을 것 같이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까? 삶이 마치 비유나 상징으로 가득차 있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과 유사하다.

  그렇게, <밤의 거미원숭이>를 읽었다. 추천할 만한 대단한 책은 아니고, 심심할 때 읽으면서 입가에 간간히 미소를 지을 만한 그런 책이다. 여름, 일주일째 지겹게 비도 오는데 조용한 카페에 앉아 커피 하나 시켜 놓고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2시간이면 족하다. 하루키의 '의미없는' 글과 안자이 미즈마루의 '어처구니없는' 그림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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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LIVey
    2008/07/27 00:18
    엄청나게 짧은 책이군요+_+ 하루키의 소설을 하나도 읽어본 적이 없는 교양없는 본인은 태엽감는새 부터 읽어봐야겠습니다;;;
    • BlogIcon freesopher
      2008/07/27 00:47

      흠. <태엽감는새>부터 읽으시면 바로 질리실 듯. 무려 4권짜리 소설이거든요ㅡ,.ㅡ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1973년의 핀볼> → <양을 쫓는 모험> → <댄스댄스댄스> 의 테크트리를 추천합니다. 간간히 서브 이벤트로 단편집들을 읽어주면 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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