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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낙심할 필요는 없다.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보고, 생각하고, 그 결과물을 소통하는 데 있어서 항상 당당하고 싶다.
 
Don't Feel Sorry For Your..
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산다는 것은
다시 글로 표현하는
무작정 가다보면
잊으면 안되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득채의 I AM A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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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8/08/20 [8월 16일 오전] 빠찡고를 하기 위해 줄을 서는 나라 - 하네다, 신주쿠 여행기
  10. 2008/08/19 많은 분들 덕택에 일본에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득채의 I Am A ROCK!]
다섯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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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Who's Next(1971)>는 <Tommy(1969)>와 함께 The Who 최고의 명반입니다.


'특집'이라고 제목을 붙이니 왠지 거창하군요.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위대한 밴드였던 The Who의 명곡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굳이 그 많은 위대한 밴드들 중에 이들을 소개하려는 이유는
이 밴드만큼 우리나라에서 저평가된 밴드도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고
록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믿기지 않으실지도 모르지만
록 음악에 미친 영향에 있어서 (제 생각엔)
The Who는 비틀즈에나 조금 못 미칠까
롤링스톤즈나 레드 제플린에 필적하거나 그 이상이고
퀸이나 메탈리카보다는 까마득히 위에 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인지도가 떨어지는 편이죠.
(록에 상당히 관심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름도 모를 정도니까요)

밴드 더 후는 영국 런던에서 1964년 결성되었습니다.
팀의 실질적인 리더인 피트 타운센드(guitar, second vocal)를 비롯
로저 돌트리(main vocal), 존 앤트위슬(base), 키스 문(drum)이 초기 멤버입니다.
1960년대는 우리가 잘 아는 비틀즈와 롤링스톤즈의 전성기였죠.
이들을 보통 English Invasion(영국 록의 미국침공)의 양대산맥이라 일컫지만
사실 당시에는 비틀즈, 롤링스톤즈 그리고 더 후까지 트로이카였습니다.
더 후는 인기와 음악성에서 비틀즈, 롤링스톤즈에 전혀 뒤지지 않았죠.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선 인기가 없었을까요?
굳이 이유를 꼽아보자면
일단 더 후의 음악은 다른 두 밴드에 비해 좀 무겁습니다.
남녀노소 좋아할만한 말랑말랑한 음악보다는
실험적이고 난해한 음악을 많이 시도했죠.
어떻게 보면 가장 ROCK적인 음악을 했던 셈인데,
아마도 그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너무 어려운 음악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은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200% 부족한 외모!!!
비틀즈에겐 젠틀하고 지적인 이미지가 있었고 (바가지머리도 ㅋㅋ)
롤링스톤즈에겐 섹시함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몸매들은 좋더군요. 얼굴은 그닥...)
그러나 더 후는 대중에게 어필할만한 외적인 매력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성팬이 많지 않았고
공연장에서 보여주는 과격한 퍼포먼스(!)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남성팬들 덕에
공연 티켓은 항상 매진이었죠.
(공연 중에 악기를 부수고 물어뜯었던 최초의 밴드라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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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운동선수도 외모가 중요한 마당에 연예인이라면 말 다했죠 ^^


밴드 소개는 앞으로 천천히 하고
일단 노래 한 곡 듣겠습니다.
1971년 발매된 정규 2집 앨범 <Who's Next>에 수록된
록발라드 <Behind Blue Eyes>입니다.

이 노래는
Limp Bizkit이 리바이벌하기도 해서 록 팬들에겐 친숙한 곡입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노래인데
지금 들어도 그다지 촌스럽거나 하지 않죠.
이런 스타일의 록 발라드는
80년대 팝 메탈 시대에는 아주 보편적이 되지만
이 당시에는 대단히 신선한 스타일의 음악이었죠.

특집 2편에서는 발라드가 아닌 좀 더 시끄러운 곡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들의 폭발할듯한 에너지와 화려한 연주력을 엿볼 수 있도록~~~

See You 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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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오랫동안 살아보지는 못했으나 도쿄에서 센다이로 이동하는 6시간짜리 야간버스는 지금까지 타 본 버스 중에서 가장 편안한 것이었다. 5시 30분 센다이 역에 도착할 때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잤다.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 Dai군에게 연락이 왔다. 동부인지, 서부인지 묻는다. 센다이 역의 크기가 꽤 커서 동쪽, 서쪽 출구를 알아야 마중 나오기 쉽단다. 역시 일본어를 모르는 내가 알 게 뭐냐. 탁선생이 버스 기사에게 물어봤더니 일본인답게 친절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알려준다. 그냥 '동', '서'만 말하면 될 것을 "혹시 일본어를 잘 못하는 이 한국인이 다른 것을 물어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고 생각한 듯 여러가지 방법으로 대답을 한다. 오히려 우린 더 헷갈려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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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사이 비가 내렸다보다

  우여곡절 끝에 6개월만에 Dai군을 만났다. 전보다 더 마른 모습이다. 멀리 한국에서 자기 이름 하나 믿고 날아온 나를 위해 몇달전부터 휴가를 내고, 호텔을 예약하고, 아버지를 협박(?)하고, 친구에게 부탁해 아침 Pick-up까지 준비해 두었다. 고마운 녀석.

  Dai군은 탁선생과 나를 자기가 일하는 호텔로 데려갔다. 일한지 6개월 남짓되는 초보 주제에 자기 이름으로 호텔방을 빌리느라 애 좀 먹은 것 같았다. 자기 직장 상사가 인사를 하러 오면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해 달란다. 그거 못하겠냐? 덕분에 공짜로 묵게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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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주변 왼쪽 베이지색 건물이 Holiday Inn Sendai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홀리데이 인 센다이Holiday Inn Sendai"다. 나와 Dai군이 호주에서 일했던 Rialto Hotel(이건 Melbourne의 5성짜리 호텔이다.)이 소속되어 있던 IHG 그룹 산하의 호텔로 비즈니스맨, 관광객들에게 유명하다. 170달러 정도로 알고 있는 트윈룸을 이틀밤이나 끊어 놓았다. 나에게 "돈 십원도 갖고 오지마!"하고 큰소리를 탕탕쳤던 녀석답게 진짜로 돈을 쓰게 하지 않을 심산이다. (실제로 내가 센다이시에서 2박을 하는 동안 탁선생과 함께 쓴 돈은 단돈 3000엔도 채 되지 않는다.)

  깨끗한 트윈룸에 짐을 던져두고 바로 Dai군의 집으로 갔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직 주무시긴 할텐데 인사를 드리고 아침밥을 먹어야하지 않겠느냐고 한다. 씻기라도 하고 찾아뵙고 싶었지만 어제 야간근무를 선 후 잠깐 자고 다시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 Dai군이 자신의 잠을 기꺼이 희생하고 우리를 데리러 온 것이기 조금이라도 빨리 집으로 가서 인사를 하고 Dai군에게 2시간이나마 잘 시간을 주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인사동에서 마련한 선물 몇가지를 챙겨서 Dai군의 친구가 가져온 차를 타고 탁선생과 함께 Dai군의 집으로 향했다.

  Dai군의 집은 전형적인 일본인 가옥같이 생겼다. 이층집이며 내부에서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호주에서 함께 호텔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산 노트북, ipod(모두 내 것이랑 똑같이 생겼다.)이 이층 Dai군의 방에 있어서 기분이 꽤 삼삼했다. 우리가 소란을 피워서 그런지 부모님께서 일어나셨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많이 들어두었던터라 나름대로 Dai군 부모님의 모습(?)을 꽤 상상했었는데 실제 느낌은 매우 달랐다. 생각보다 연세가 좀 있으셨고 인상이 매우 좋았다. (Dai군의 설명에 의하면 아버지는 상당히 '경상도스러운 남자'였으나 이틀 내내 함박 웃음만 연신 지으시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였다.)

  집을 둘러보다가 주방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싱크대 위에 놓인 500ml짜리 기린, 아사히 슈퍼 드라이 맥주 6캔. 무려 3000cc다. 어제 일본이 야구에서 이겨서 드신건가? 식탁에 둘러앉아 TV를 켜놓고(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밥을 먹었다. 낫토, 간장, 메다마 야끼(계란 후라이), 오이 초절임, 미소 수프다. 그야말로 간단한 일본식 아침식사였다. 그런데 진짜 일본 가정에서 먹는 미소 수프는 감동의 도가니탕이었다. 너무 맛있다. 적당히 미소 냄새만 나는 멀건 국물을 주는 한국의 일본 식당과는 차원이 다르다. 밥을 먹으며 야구 소식을 슬쩍 물었다. 물론 일본어가 '조금' 가능한 탁선생이다. 나름대로 즐거운 대화를 시작하려는 배려였다.

  그러나 한국이 일본을 이겼단다. 그것도 역전으로. 그래서 맥주를 저렇게 비워버리신 거란다. 푸훗ㅡ! 첫날부터 우리 야구 선수들이 큰 기쁨을 안겨준다. 아버지는 영 못마땅하신 기색이었으나 야구에 있어서는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야구팬인 나의 입장이기에 앞에서 조금 웃어드렸다. Dai군도 일본이 진 사실에 대해 불편하다. 어쩌랴! WBC때부터 발목만 잡아오던 한국이 또 제대로 잡았으니 답답할 만도 하다. 괜시리 야구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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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엔 이렇게 생긴 거시 2000원에 판매된다

  아버지, 어머니께 선물을 드렸다. 인사동에서 무엇을 살 지 내내 고민하다가 구입한 것은 아름다운 한글이 수놓인 식탁보와 고급스러운 커플(?) 부채였다. 그리고 전통 문양이 그려져 있는 싼 부채 몇 개는 Dai군의 친구들과 이웃들을 위해 준비했다. 허리를 90도로 꺾으시며 고맙다고 하시는데 몸 둘바를 몰랐다. "초카와이~!"를 연발하셨지만 사실 그거 사는데 5만원도 안 들었다. 한국의 물가는 싸단 말이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호텔까지 아버지가 태워주셔서 편하게 돌아와 일단 낮잠을 잤다. 오후에 일본 3대 절경 중 하나인 마쓰시마로 데려갈테니 사양말고 Dai네 집으로 오란다.

  Dai군에게 너무 폐를 끼치게 된 것 아닌가 했더니 말한다.

아버지는 이번에 나의 브라더가 온다고 열흘짜리 휴가를 내신거라고. 절대 사양말고 오로지 '오이시이데스',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오네가이시마스'만 말하라구. 사주시면 다 받고, 다 먹어. 그냥 감사하다고만 하면 돼.
  ...

  2시에 맞춰서 Dai군이 사는 동네 역으로 전철을 타고 갔다.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아버지가 우릴 데리러 오셨다. 나와 탁선생은 비가 많이 오는데 괜찮겠느냐고 여쭤봤는데 쓰나미가 일 정도가 아니면 상관없다고 하신다. (사실 내가 센다이로 올라갈 때 태풍도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집에 잠깐 들러 어머니를 모시고 마쓰시마로 향했다. Dai군은 그 때 호텔에서 일하고 있었다.

  마쓰시마는 일본 3대 절경 중의 하나다. 한국으로 따지면 해금강정도가 되겠다. 바다에 조그만한 섬들이 마치 일본식 정원처럼 펼쳐져 있는 곳이다. 비가 어느 정도 그치긴 했으나 그래도 날씨가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아버지가 배를 타러 가잔다. 밖에서 사진만 찍는 걸로는 부족하다고. 그래서 예정에도 없었던 마쓰시마 관광 유람선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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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군도 머리가 벗겨지는걸까?

  일본어를 전혀 못해 아버지,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끊임없이 내 손을 잡고 어디로 데려가시거나 무엇을 보여주시거나 하셨다.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 아들 녀석을 앉혀 놓고 갖가지 설명도 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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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시마 유람선 내부

  유람선 안에서 경치를 구경하며 돌고 있는데 밖에 나가셨던 어머니가 새우깡(?) 봉지를 들고 돌아와 나를 이끌고 나가신다. 유람선 뒷편에는 사람들이 갈매기에게 과자를 주고 있었다. 섬의 사진을 찍기에도 이편이 더 나았다. 나는 갈매기에게 과자도 던져주고, 사진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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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인 꼬마들이 갈매기를 던져주면서 카와이~ 스고이~ 꺄르르르~ 거리기에 동영상도 슬쩍 찍어보았다.

  마쓰시마를 돌아보고 유람선에서 내렸는데 유카타를 입은 여자들이 많이 다닌다. 무슨 축제라도 있나? 하면서 해변가를 둘러보니 일본식 포장마차들이 한 줄로 죽 늘어서 있다. 어머니께 물어봤더니 "하나비"가 있다고 하신다. 우리가 마쓰시마에 갔던 날이 하필 불꽃놀이 하면서 노는 날이었던 것이다. 이런 호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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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초밥을 먹으러 갈 예정이었으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국에서 온 아들(?)을 위해 "일본식"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으셨는지 포장마차로 우릴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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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노미야키를 먹자!

  해마다 맛이 없었다는데 올해는 그나마 먹을 만 하다고 하신다. 나와 탁선생은 한국의 일본식 술집에서 파는 것보다 더 맛있다고 느끼며 고개를 끄덕이는 데 말이다. 역시 음식이란 것은 본고장에서 먹어야 제 맛이다.

  그렇게 오코노미야끼를 하나씩 해치우고 여기서 하나비를 볼 것인가, 밥을 먹으러 갈 것인가 고민하다가 그냥 밥먹기로 했다. 그깟 불꽃놀이야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유카타를 입은 초 카와이 걸과 함께가 아니라면 의미없다. -_-a 그래서 마쓰시마 앞에 있는 절, '즈이간지'에 들렀다가 초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물론 지금까지의 모든 경비와 앞으로의 모든 경비는 Dai군 아버지와 어머니의 몫이었다. 유후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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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화이트서리
    2008/08/26 15:14
    우와; 일본인 친구분이신가봐요.
    부럽네요. ^^
  2. BlogIcon 컴속의 나
    2008/08/27 00:29
    친구가 있으니까 대접도 달리 받으시네요^^
    어머니께는 일본어로 물어보셨나요^^
    하나비보다는 밥이 났죠.
    • BlogIcon freesopher
      2008/08/27 06:05

      물론이죠 :)

      어머니께 제가 할 수 있었던 말이라고는...

      "와까리마시다"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오나까 이빠이데스"

      ....-_-a

      정도?

      "다음에 일본에 방문할 때는 '어머니'집에 묵으면서 꼭 일본어만 사용하도록 해!" 라고 혼내시더군요 ^^;

  3. BlogIcon LIVey
    2008/08/27 01:09
    우와... 호텔에서 공짜로 묶으시고 불꽃도... 거기다 오꼬노미야끼까지ㅠㅠㅠ
    아...슬퍼집니다ㅠㅠㅠ
    • BlogIcon freesopher
      2008/08/27 06:06

      .....

      음... 슬퍼지시면 안되요!

      LIVey님도 알바 열심히 하셔서 일본 정도 한번 땡겨주는 센스쟁이?
      물론... 우리 땅박님께서 환율 갖고 장난 그만치셔야 가능하겠만 말이죠...;;;



    메이지 신궁에서 나와 신주쿠까지 걷기로 했다. 중간에 NHK 방송국을 지날 수 있어서 방송국 구경도 할 겸해서 걸었다. 얼마 걷지 않아 떠들썩한 소리가 들린다. 낯익은 음악이다.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 쓰고 치렁치렁한 머리를 흔들며 오른손을 들어 흔들고 있다. 힙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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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베이베

  우리도 같이 몸을 흔들며 구경하다가 더이상 지체하다가는 기노쿠니야 서적에 들렀다가 저녁을 먹고 차를 한잔 한 후 버스를 탄다는 계획이 무산될 것 같았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신주쿠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신주쿠로 가는 길에는 힙합 하는 친구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비가 내려서 거리에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데도 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주로 고등학생, 대학생 정도의 어린 친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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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로운 모습.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산다는 자신감. 너무 보기 좋았다. 언젠가 일본 대중문화의 장점(?)으로 그 다양성을 꼽은 적이 있다. 음악의 다양성을 제대로 해치고 있는 한국의 거대 기획사들이 일본의 그것을 베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다지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화, 드라마, 음악, 등에서 일본 대중문화가 보여주는 다양함은 당장은 한국의 드라마, 영화가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일본 영화들은 하나같이 실패할 지 몰라도 장기적 안목으로 보았을 때는 분명 일본의 문화에 종속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문화의 힘은 결코 자본이나 머릿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다양함'에 있기 때문이다.

  NHK 방송사 뒷편에는 축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딱히 멈춰서서 구경할 만한 것은 없었다. 그냥 대충 사진이나 몇 장 찍고 지나왔다. 신주쿠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갑자기 심한 허기가 밀려왔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덮밥 한 그릇 먹은 것이 전부다. 신주쿠의 100엔 초밥집에서 밥을 먹을 계획이었는데 이래서야 신주쿠까지 걸어가기도 전에 쓰러질 것 같았다. 그래서 '모스 버거MOS BURGER'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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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 버거

  모스 버거는 일본 토종 햄버거 프랜차이즈다. 던킨 도너츠 대신에 '미스터 도너츠'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 "엄청 매우니 조심하라"고 되어 있는 햄버거를 하나 시켰다. 가격은 생각보다 한국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일본의 체감물가가 한국의 2배 정도 된다는 것을 감안해 볼 때 한국 햄버거 가게들이 얼마나 폭리를 취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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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뭐가 맵단 거냐!

  햄버거는 생각보다 매우 맛있었다. 맥도날드(마꾸도나르도~)나 롯데리아보다 훨씬 나은 것 같았다. 감자튀김이 비싸서 시키지 않고 그냥 콜라와 햄버거만 먹었다. 굉장히 비좁은 자리에 앉아 먹고 나니 조금 쉬고 싶었지만 곧 자리를 뜰 수 밖에 없었다. 무슨 생각으로 햄버거 가게의 자리를 이렇게 좁게 만들었나 싶을 정도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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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을 구경(?)하며 신주쿠까지 걸었다. 나의 목표는 '기노쿠니야 서점'이었다. 하루키 기행이 와세다 대학에서 이미 끝장났다고 볼 수 있었지만 그래도 서점은 보고 싶었다.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가 기노쿠니야에 어떻게 진열되어있는지 궁금했다. 100엔(지금은 120엔이었다) 초밥집에서 밥을 먹고 기노쿠니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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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노쿠니야 서점

  기노쿠니야는 그리 큰 서점이 아니었다. 신촌의 홍익문고보다 조금 더 크게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한국의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의 초대형 서적 체인들보다는 작았다. 나는 서점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점에서 할 일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일본어로 뒤덮인 서점에서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은 단 한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조건 '문학'을 찾았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어디에 진열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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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도가니 탕이다ㅠ 회색 띠에 "영화화결정!"이라고 써놨다.

  일본에 들어온지 만 하루가 꼬박 지나서야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날 수 있었다. 무슨 말인지 전혀 읽을 수 없었으나 그냥 좋았다. 괜시리 책을 들고 냄새를 맡고 얼굴에 부비부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섹션에는 <노르웨이의 숲> 외에도 그의 다른 작품들이 있었다. 일본어로 출판된 소설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조금 이상하긴 했다.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