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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낙심할 필요는 없다.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보고, 생각하고, 그 결과물을 소통하는 데 있어서 항상 당당하고 싶다.
 
Don't Feel Sorry For Your..
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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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가다보면
잊으면 안되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득채의 I AM A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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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5/05/14 무라카미 하루키, <TV 피플>

    메이지 신궁에서 나와 신주쿠까지 걷기로 했다. 중간에 NHK 방송국을 지날 수 있어서 방송국 구경도 할 겸해서 걸었다. 얼마 걷지 않아 떠들썩한 소리가 들린다. 낯익은 음악이다.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 쓰고 치렁치렁한 머리를 흔들며 오른손을 들어 흔들고 있다. 힙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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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베이베

  우리도 같이 몸을 흔들며 구경하다가 더이상 지체하다가는 기노쿠니야 서적에 들렀다가 저녁을 먹고 차를 한잔 한 후 버스를 탄다는 계획이 무산될 것 같았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신주쿠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신주쿠로 가는 길에는 힙합 하는 친구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비가 내려서 거리에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데도 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주로 고등학생, 대학생 정도의 어린 친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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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로운 모습.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산다는 자신감. 너무 보기 좋았다. 언젠가 일본 대중문화의 장점(?)으로 그 다양성을 꼽은 적이 있다. 음악의 다양성을 제대로 해치고 있는 한국의 거대 기획사들이 일본의 그것을 베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다지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화, 드라마, 음악, 등에서 일본 대중문화가 보여주는 다양함은 당장은 한국의 드라마, 영화가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일본 영화들은 하나같이 실패할 지 몰라도 장기적 안목으로 보았을 때는 분명 일본의 문화에 종속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문화의 힘은 결코 자본이나 머릿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다양함'에 있기 때문이다.

  NHK 방송사 뒷편에는 축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딱히 멈춰서서 구경할 만한 것은 없었다. 그냥 대충 사진이나 몇 장 찍고 지나왔다. 신주쿠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갑자기 심한 허기가 밀려왔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덮밥 한 그릇 먹은 것이 전부다. 신주쿠의 100엔 초밥집에서 밥을 먹을 계획이었는데 이래서야 신주쿠까지 걸어가기도 전에 쓰러질 것 같았다. 그래서 '모스 버거MOS BURGER'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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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 버거

  모스 버거는 일본 토종 햄버거 프랜차이즈다. 던킨 도너츠 대신에 '미스터 도너츠'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 "엄청 매우니 조심하라"고 되어 있는 햄버거를 하나 시켰다. 가격은 생각보다 한국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일본의 체감물가가 한국의 2배 정도 된다는 것을 감안해 볼 때 한국 햄버거 가게들이 얼마나 폭리를 취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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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뭐가 맵단 거냐!

  햄버거는 생각보다 매우 맛있었다. 맥도날드(마꾸도나르도~)나 롯데리아보다 훨씬 나은 것 같았다. 감자튀김이 비싸서 시키지 않고 그냥 콜라와 햄버거만 먹었다. 굉장히 비좁은 자리에 앉아 먹고 나니 조금 쉬고 싶었지만 곧 자리를 뜰 수 밖에 없었다. 무슨 생각으로 햄버거 가게의 자리를 이렇게 좁게 만들었나 싶을 정도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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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을 구경(?)하며 신주쿠까지 걸었다. 나의 목표는 '기노쿠니야 서점'이었다. 하루키 기행이 와세다 대학에서 이미 끝장났다고 볼 수 있었지만 그래도 서점은 보고 싶었다.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가 기노쿠니야에 어떻게 진열되어있는지 궁금했다. 100엔(지금은 120엔이었다) 초밥집에서 밥을 먹고 기노쿠니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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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노쿠니야 서점

  기노쿠니야는 그리 큰 서점이 아니었다. 신촌의 홍익문고보다 조금 더 크게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한국의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의 초대형 서적 체인들보다는 작았다. 나는 서점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점에서 할 일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일본어로 뒤덮인 서점에서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은 단 한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조건 '문학'을 찾았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어디에 진열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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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도가니 탕이다ㅠ 회색 띠에 "영화화결정!"이라고 써놨다.

  일본에 들어온지 만 하루가 꼬박 지나서야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날 수 있었다. 무슨 말인지 전혀 읽을 수 없었으나 그냥 좋았다. 괜시리 책을 들고 냄새를 맡고 얼굴에 부비부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섹션에는 <노르웨이의 숲> 외에도 그의 다른 작품들이 있었다. 일본어로 출판된 소설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조금 이상하긴 했다. 원본이 일본어인데도 왠지 하루키는 한글로 글을 써야할 것 같은 느낌?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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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실의 시대>를 살까말까 망설이다가 아무리 '로망'이라고 하더라도 아이우에오 조차 읽을 줄 모르는 녀석이 책을 사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내려놓았다. 로망도 기본 소양이 있어야 로망 타령을 할 수 있는 법이다. 책을 내려놓고 서점 안을 기웃거리다가 한국문학 섹션을 발견했다. 그렇다. 우리도 일본 소설이 많이 번역되어 출판되는데 한국 소설이라고 일본에 없을 리 없다.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며 어떤 책이 번역되었나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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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이다!

  두근거리며 일본어를 읽을 줄 아는 탁선생에게 제목을 불러달라고 하거나 가타가나가 아닌, 한자로 적혀 있는 작가의 이름을 읽으며 작품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그리고 완전히 실망해버렸다. 여기에는 우리가 소위 '문학'이라고 부를 만한 한국의 작품이 거의 없었다. 허탈할 정도로 없었다. 일본의 최대 서적 체인에 '한국문학'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당당히(?) 꽂혀 있는 것은 내가 보기에 문학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민망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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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프다. 수많은 작가들이 소설을 쓰고 있고 또 많은 독자들이 소설을 읽고 있건만 그것은 우리 내부에서만 소비되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일본 작가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건만 일본에서는 늘 팔아먹는 드라마의 재탕 버전 뿐이었다. 물론 드라마를 일본에 파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나라의 '문화'를 느끼는 것은 누가 뭐래도 문학이다. 누구도 욘사마가 나오는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해서 한국을 문화 강국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한국 서점이 일본 문학으로 뒤덮인 지금 드라마 몇 편 팔아먹었다고 '한류'니 뭐니 하는 것이 조금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대체 귀여니의 소설은 무슨 생각으로 일본어로 '번역'해서 당당히 '한국문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파는 것일까? 부끄럽다.)

  물론 반가운 작품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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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 이광수의 <무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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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칼의 노래>, 위기철의 <아홉살 인생>도 있다.

  그러나 드라마 DVD를 파는 판매장인지 소설 책을 파는 서점인지 이해할 수 없는 기노쿠니야의 한국문학 책장은 아무래도 문학을 좋아라 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다지 유쾌한 곳이 아니었다. 우리 문학계에도 위대한 소설가들이 많이 있으며 새로이 문단에 등장하는 젊은 소설가들의 글은 요즘 뜨는 일본 문학 못지 않게 경쾌하면서도 현실을 꿰뚫어보는 눈을 가졌다. 그러나 그런 작품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는지 DVD 소개 책자만이 서고를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팔리지 않는 상품을 생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투자'라는 개념도 있다. 당장은 팔리지 않을지 몰라도 적극적으로 우리 문학을 번역하고 제공하다보면 언젠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지금의 일본문학처럼 우리 문학이 일본 서점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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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도 분위기도 맛도 모두 Good!

  기노쿠니야에서 나와 하루종일 걷느라 피로해진 다리도 쉴 겸 카페에 들어갔다. 일본의 커피는 맛있다. 탁선생과 앉아 담배를 피우며 커피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 도쿄도청으로 향했다. 전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에 속하는 도쿄의 도쿄도청은 그냥 '거대하다'라는 말만 들었지 실제로 본 일은 없기에 조금 기대되었다. 워낙 건물을 높게 지어놔서 꼭대기층은 무료 전망대로도 사용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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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청

  과연 도쿄도청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서울시청이나 경기도청은 이에 비하면 '부속건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러니 도쿄도지사 같은 녀석이 망언을 함부로 하는 것일게다. 인간이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마치 자신을 대변한다고 느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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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63빌딩의 전망대 전용 엘리베이터 같은 것을 타면 중간에 멈추는 것 없이 바로 올라간다.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원래 전망대 용도로 지은 건물이 아니기에 엘리베이터가 유리로 되어 있다거나 하는 특별(?) 서비스는 없다. 단, 일본답지 않게 공짜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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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보여줬으니 물건을 사라!

  꼭대기에는 별 것 없었다. 그냥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으며 작은 레스토랑이 있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가운데에는 기념품점이 있었다. 역시 공짜로 구경거리를 제공했으면 물건을 사라는 심보다. 내가 쓸데없는 물건을 샀을리 만무하다. 방금 공짜라서 마음에 들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도쿄의 야경은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았다. 그 거대한 크기에 놀라긴 했으나 사실 미적가치로만 본다면 서울의 야경이 훨씬 나았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야경을 어떻게 찍어야할 지 몰라서 플래시도 터뜨려보고(이러면 유리에 반사된다) 그냥 찍어도 보고(초점이 안 잡힌다) 했으나 도저히 사진이 나오지 않아 그냥 포기했다. DSLR... 역시 좋은 카메라가 필요하다.

  야경을 보며 전망대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쉬는데 Dai군에게 전화가 왔다. 뭐하냐고 묻는다. Tokyo Goverment Office의 Obsevation Deck에서 야경을 보는 중이라고 했더니 그런 게 있는지 몰랐단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지금 아버지랑 야구를 보고 있는데 일본이 한국에 2-0으로 이기고 있다고 했다. Dai군의 어조로는 한국의 패배가 확실한 것 같았다. (물론 한국은 일본을 이겼다.) 결과를 알아볼 길이 없기에 한국이 2-0으로 졌다고 생각한 나와 탁선생은 괜히 담배만 한대씩 피울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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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긴 지하보도

  도쿄 도청을 나와 지하보도를 통과하여 신주쿠 역쪽으로 걸었다. 동전사물함에 넣어두었던 짐을 찾아서 역 근처에 있는 고속버스터미널로 갔다. 이제 센다이로 가서 나의 브라더 Dai군을 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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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만나러 간다, 브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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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빡쑤
    2008/08/25 21:48
    모스버거 맛나염 맛나염 ㅋㅋㅋ
  2. nochi
    2008/08/26 18:03
    모스버거는 L버거나 M버거하고 비교하기 어렵죠. 주문 받은 후 직접 만드는 것이니까요. 굳이 비교한다면 크라체 버거하고 비교 가능할까요? 그리고 할인 쿠폰은 없었나보죠? 가게 앞에서 나눠주는 할인쿠폰 사용하면 2/3가격에 먹을 수 있는데...
    갓 튀겨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튀김과 어니언링도 맛있는데... 일본에서는 케쳡을 달라고 해야 줍니다.
    • BlogIcon freesopher
      2008/08/26 21:37

      앗ㅠ_ㅠ

      nochi님께 듣고 갔어야 하는데...

      워낙 일본에 대해 아는게 없으니 할인 쿠폰을 생각할 여유가 허허;;;

  3. BlogIcon 컴속의 나
    2008/08/27 00:21
    여행 코스를 요렇게 따라하면 되겠네요^^
    가보고 싶어요^^;;
    • BlogIcon freesopher
      2008/08/27 06:02

      이 여행기의 말미에 여행에서 쓴 돈을 올려볼 생각입니다. 처음 도쿄에 가본 사람이 돈 안들이고 한바퀴 둘러보고 와서도 이렇게 '돌아본 척'할 수 있는 정도..?

      -_-a

      일본.

      한번쯤 가볼만한 나라인 것 같습니다.

  4. BlogIcon LIVey
    2008/08/27 01:06
    일본문화의 다양성은 정말 부럽더군요...ㅠㅠ
    모스버거...맛이 궁금해요ㅠㅠㅠ
    서점에서 책과의 부비부비는 어떻게 하셨을지 상상했습니다-_-;;;
    한국책은 정말 충격적이네요. 아예 없는것보다 더 충격입니다ㅠㅠㅠ
    • BlogIcon freesopher
      2008/08/27 06:03

      "아예 없는 것보다 더 충격"이라는 표현에 완전 공감합니다. 사실 문학을 전공한 입장에서 귀여니의 소설을 '문학
      '의 새로운 경향으로 인정하기에는 힘들었거든요. 게다가 그것만이 아니라 드라마 DVD 소개글에 불과한 소설들이 번역되어 팔리고 있는 사실에 '한국문학'이라는 것의 일본 내에서의 위상이 너무 슬펐습니다.

      모스버거... 굳!

      부비부비... 굳!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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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우리들대로 즐기고, 들쥐는 들쥐 나름대로 재미있게 살면 되지 않을까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밤의 거미원숭이>는 소설(小說)이다. 문자 그대로 짧은 글이라 보면 되겠다. 각각의 글들은 모두 소설의 성격을 띄고 있으나 그 분량이 현저히 적어 민망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하루키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을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짧은 단편(이라는 것도 이상한 표현이지만, 달리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은, 사실은 잡지에 광고 시리즈로 쓰인 것이다.

  36편의 단편은 핸드북 크기의 책에 2~3 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실려 있다. 신문 광고 시리즈였으니 글의 내용이 길 리 없다. 각각의 글은 완결된 구조를 갖고 있는 이야기 형식도 있고, 뜬금없는 독백체의 형식을 취한 것도 있다. 앞에서 등장했던 인물, 예를 들면 와타나베 노보루, 가 다시 등장하는 글도 있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무관한 내용의 글도 있다. 기상천외한 내용도 있고,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내용도 있다. 이 모든 작품을 묶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우습게도 36개의 단편이 전혀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광고 시리즈로 사용되었다고는 하나 광고 내용과는 전혀 무관한 글 뿐이다. 몇 가지 뺀 작품도 있고, 책으로 편집하면서 두 작품정도 들어가기는 했으나 일관성이 없는 내용들이라는 점에서 어떻게 광고로 사용되었는지 의문스럽다.

  글은 오랜만에 하루키스럽다고 하겠다. 1995년에 일본에서 출간된 책(한국은 1996년)이니 예전 그의 냄새가 물씬 나는 글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좋다. <태엽감는 새>를 쓸 무렵에 한 달에 한 편씩 광고용(전혀 광고와 무관하지만)으로 썼다. <태엽감는 새>라면 하루키적 글쓰기가 최고로 빛을 발할 때 완성된 대작(?)이 아닌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매력 중 하나는 그의 묘한 서사 방식일 것이다. 우리는 문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낯설게 하기', 중학교 때 배운다, 를 꼽는다. 원래 '낯설게 하기'라는 것은 러시아에서 완성된 개념인데, 항상 경험하기 때문에 일상화되어 익숙해져 버린 사물 혹은 관념을 낯설게 느끼게하여 새로운 느낌을 이끌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보는 문학작품들이 갖고 있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것은 주로 '비유'나 '상징'과 같은 수법을 통하여 나타난다.

  '비유' 혹은 '상징'은 언제나 원관념을 가진다. 원래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 있고, 그것을 '낯설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루키는 다르다. 그가 꺼내는 사물, 관념은 마치 비유와 같아 보이는데, 마치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 같은데 그 실체가 없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나는 너무 난처해서 보초보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말야, 아까 모쇼모쇼가 우리 집에 와서 쿠랴쿠랴를 두고 갔네. 사례라고 하면서 말이야. 난 무척 곤란하다고."
  "괜찮아요, 선생님. 그런 것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보초보초가 말했다.
  "모쇼모쇼는 세무서에 대한 대책으로, 어쨌든 그걸 누군가에게 주어야만 하거든요. 받아두세요. 받아두세요. 그것 꽤 괜찮은 거라구요. 사모님께는 제가 적당히 말씀드릴게요. 눈 딱 감고 그냥 받아두세요."
  그렇게 해서, 나는 지금 쿠랴쿠랴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사용해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다. 이제는 손에서 놓지 못할 것 같다.

  언뜻 보았을 때 쿠랴쿠랴는 '돈'인 것 같다. 그러나 곰곰히 읽어보면 쿠랴쿠랴라는 것이 다른 것이 되어도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사용한다는 것이 뭘까? 돈을 사용한다, 고 하니까 어쩐지 어감이 이상하다. 그렇다면 보초보초는 누구를 의미하며 모쇼모쇼는 누구를 의미하는가? 쓸데없이 머리를 굴려봐야 남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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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사용한다'는 것은 이런 느낌일까?


  이런 것이 하루키의 문학이다. 그가 쓴 장편 소설들은 허황되고, 환상적인 것 같아 보이면서도 상당히 짜임새있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 치밀한 복선도 깔려 있다. 그러나 그것들 하나하나가 모두 실체와 맞닿은 상징이나 비유가 아니기에 어처구니 없어 보인다. 내용이 없어 보이고, 깊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매력으로 꼽는다.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는 일상에서 벗어난,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해보기 위해서다. (이것을 문학의 '간접체험'이라고 한다.) 하루키의 문학은 그런 점에서 매력이 있다. 누구도 미리 정해놓은 것 같지 않은, 우리를 둘러싼 갖가지 현상에 이끌려가는 우리네 삶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운명은 있을 것 같이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까? 삶이 마치 비유나 상징으로 가득차 있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과 유사하다.

  그렇게, <밤의 거미원숭이>를 읽었다. 추천할 만한 대단한 책은 아니고, 심심할 때 읽으면서 입가에 간간히 미소를 지을 만한 그런 책이다. 여름, 일주일째 지겹게 비도 오는데 조용한 카페에 앉아 커피 하나 시켜 놓고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2시간이면 족하다. 하루키의 '의미없는' 글과 안자이 미즈마루의 '어처구니없는' 그림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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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LIVey
    2008/07/27 00:18
    엄청나게 짧은 책이군요+_+ 하루키의 소설을 하나도 읽어본 적이 없는 교양없는 본인은 태엽감는새 부터 읽어봐야겠습니다;;;
    • BlogIcon freesopher
      2008/07/27 00:47

      흠. <태엽감는새>부터 읽으시면 바로 질리실 듯. 무려 4권짜리 소설이거든요ㅡ,.ㅡ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1973년의 핀볼> → <양을 쫓는 모험> → <댄스댄스댄스> 의 테크트리를 추천합니다. 간간히 서브 이벤트로 단편집들을 읽어주면 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