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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낙심할 필요는 없다.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보고, 생각하고, 그 결과물을 소통하는 데 있어서 항상 당당하고 싶다.
 
Don't Feel Sorry For Your..
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산다는 것은
다시 글로 표현하는
무작정 가다보면
잊으면 안되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득채의 I AM A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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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16 학교에 놀러온 교생실습 담임반 아이들
  2. 2008/05/31 결국 교생 고별식에서 울어버리다
  3. 2007/10/31 타즈매니아 Tasmania에 대해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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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7/09/03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Melbourne, Aug, 2007
  8. 2007/09/03 Share House, Melbourne, Aug, 2007
  9. 2007/05/01 Pt. Cambell, Great Ocean Road, Apr, 2007
  10. 2007/04/30 Etc, Great Ocean Road, Apr,2007

  지옥과 같았던 기말이 끝났다. 그리고 아이들이 놀러왔다. 벌써 2주전부터 온다고 난리를 치다가 결국 선생님들의 기말 기간이 끝나는 것에 맞추어 왔다. 11시까지 낙성대역에서 보기로 했는데, 마을버스도 타야하고 꽤 아이들에게 힘든 것이 많아 우리가 마중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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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나한테 혼나는 종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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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선생님에게 혼나는 민호


  이놈들... 여전했다. 이제 2주 정도 지났지만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녀석들이니 뭔가 달라진 모습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똑같았다. 여전히 까불고, 떠들고, 장난치고, 우리에게 혼났다.

  놀토인데도 학원에 가야한다는 녀석들 때문에(물론 우리랑 놀다가 학원 시간은 훨-씬 늦어버렸다.) 월곡동에서 신림동까지 왔음에도 밥만 먹고, 음료수나 마시며 놀다가 보냈다.  우리가 교생실습 기간에 출퇴근 하는데 곤욕을 치렀던 먼 거리인데도 아이들이 교생들을 보러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고마운데, 피자 한 조각, 아이스크림 하나, 음료수 하나 사줄 수 밖에 없는 질낮은(?) 교생의 처지가 너무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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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 사범대에서부터 본부까지 걸어내려갔다 올라왔으면서 쓸데없이 학교가 크기만 하다고 우는(!) 녀석들과 함께 정말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물론 물리 선생님은 1시에 시험보러 가고, 나도 3시까지 출근이라 오랫동안 함께 있어주지는 못했다. 아이들도 학원가야 된다고 해서 얼른 보냈지만 말이다. (오늘 빼먹겠다고 난리를 치는 녀석들을 겨우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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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너무너무 좋아해주는 현우(나도 좋아!)


  교생실습의 여파가 생각보다 오래 가는 것 같다. 1주일 쯤 지나면 잊혀지겠지, 2주일 쯤 지나면 잊혀지겠지, 하지만 녀석들이 토요일에 나타나는 바람에 또 1주일 연장이다. 바쁘게 기말을 보내면서 한없이 쌓였던 스트레스가 "어제 담임 선생님한테 맞았어요!"하며 징징대는 아이들을 다독여주다 보니 어느새 없어져 버렸다. 정신없이 아이들을 쫓아다니고, 도망가는 것 잡아오고, 축구공도 없는데 대학교에서 축구하고 싶다고 소리지르는 녀석들과 실랑이를 벌이다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교사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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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정에서 단체사진 한컷! (간지남 종웅이가 가려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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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연 앞에서 한 컷! (민선이 어디보냐!)


*덧) 중간에 수업듣고 있던 김녜원과 정봉이도 나와서 애들과 시간을 보냈다. 김녜원은 나와 같이 국어수업을 해서 아이들이 잘 알고 있었고, 정봉이는 3,4,5반 국어를 맡았는데, 큰 키에 붙임성있는 성격으로 아이들이 "이미" 알고 있었다. 물론 우리반 교생들과도 친분이 있기에 들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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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빡쑤
    2008/06/16 16:17
    그러니 교단에 투신하시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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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나는 울지 않을 줄 알았다.
 
  물론 슬프기야 하겠지만, 남자 중학생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출입문 앞에서 벌써부터 울먹울먹하는 사회 선생을 다독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울어버리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니 여선생님부터 하시라고 배려까지 해줬다.

  그래놓고선 음악 선생 울고, 수학 선생 울고, 영어 선생 "여러분..." 한 다음에 울다가 말 못하고, 사회 선생이 울고 나서 내 차례가 되었다. 앞에서 사회 선생이,
  여러분들이 자라서 타임머신을 개발해 선생님을 태워주면 2008년 5월 6일로 돌아와 다시 여러분과 함께 한 달을 보낼 겁니다.

할 때 이미 울컥한 상황이었다. 교단에 서서 녀석들을 내려다보니 벌써부터 눈이 빨간 녀석이 한 둘이 아니었다. 오늘 합창대회때 썼던 초록색 스카프를 양손에 쥐고 끝없이 얼굴에 댔다, 뗐다 하고 있다. 남자녀석들이 이렇게 울고 있는 것을 보니 도저히 나도 어떻게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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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울 줄은 정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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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별식 후 펑펑 울던 상우

  말을 시작했는데, 벌써 울음이 섞인 소리다. 제길. 내가 그동안 애들 앞에서 닦아놓은 이미지가 얼마나 강했는데 이런 녀석들 앞에서 운다니...

  그러나 울었다.

  목놓아 펑펑 운 것은 아니지만 울음을 삼키느라 고생했다. 어차피 주말 지나면, 일주일이 지나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며 뛰어 놀 아이들이고, 나 또한 레포트와 시험과 취업준비에 치이다보면 교생 실습이 먼 꿈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리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난 대학은 8년째 다니고 있단 말이다.) 하지만 뭔가가 북받쳐 올라와 도저히 웃으면서, 평소에 녀석들 앞에서 농담 따먹기를 하며 자신감있게 수업을 이끌 때처럼 말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너무 어울리지 않게 난 이야기의 끝을 맺지 못했고, 뒤에 계시던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제대로 울려버렸다. 교실 밖으로 나와 교생들에게 "설마 국어 선생님이 거기서 울어버릴 줄은 몰랐네. 이 인간 이거, 아... 선생님 때문에 또 울었잖아요!" 하는 투정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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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반 교생 선생님들과 한 컷

  그렇다. 내가 언제 이 녀석들을 다시 만날 것이며, 내가 언제 이 놈들과 함께 레슬링을 하고 놀 것인가. 녀석들은 녀석들의 삶을 살고, 나는 나대로의 삶을 살겠지. 지금처럼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녀석들의 교과서가 되고, 참고서가 되는 인생 최고의 경험을 다시 할 수는 없겠지. 교사가 되지 않는 한. 그러나 순간에 북받쳐 오르는 감정은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추억. 좋은 추억이라 치부하기에 너무 큰 기억을 내게 남겼기에 아이들의 사진을 여기다 올려 놓겠다.

사진보기

  비록 한 달짜리 교생이었지만, 사랑해줘서 고맙다, 아이들아.

  부록으로 우리 반 아이들 합창대회 동영상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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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빡쑤
    2008/06/02 08:13
    울어버리시다뉘. 약간 의외라는?
    즐거운 교생의 추억! 수고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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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아침 Jim의 집 Office에서 일하는 친구(이름을 까먹었다. -_-)가 소개해준 렌터카 회사로 갔다. 물론 내가 미리 전화를 해서 우리의 사정을 이야기한 후 '그래도' 차를 빌릴 수 있는지 물어본 후 였다. 역시 전화상으로는 가능하다고 했으나 어제 한번 당한 후라 곧이 곧대로 믿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차를 빌릴 수 있었다. 하루 55불에 미쯔비시사의 마그나를 빌렸다. 1500불 보험이 포함되어 있었고 신용카드가 없이 빌렸기에 보증금으로는 300불 정도만 냈다. 세상에. 이렇게 저렴하게 빌릴 줄이야! 전날 우리가 퇴짜맞았던 그 노인네의 가게는 보증금 750불에 하루 69불을 요구했었드랬었었다. 아! 그 이름도 아름다운 바겐 카(Bargain Car)! 그래도 혹시 몰라서 이번엔 처음부터 Jim의 이름으로 차를 빌렸고 민의 이름은 차를 Share하는 사람 목록에 올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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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과 차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차를 빌려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일단 그날 밤에 주희가 학교 마치고 호바트로 날아오기로 되어 있었기에 바로 일주를 시작할 수는 없어서 호바트 근교로 놀러가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Port Arthur! 호바트 시내에서 A3 도로를 타고 공항과 Sorell을 지나서 갈 수 있는 곳이다. 민이 차를 몰고 출발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언제나 쓸데없는 농담과 타이밍을 못맞추는 말들로 인해 우리에게 구박만 받던 민이 진정한 프로빼쑈날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경악할만한 드라이빙 실력을 보이며 Port Arthur까지 달렸다. 운전대를 잡는 순간 멋진 녀석으로 변한 민을 보며, "나도 차 몰때는 여자들한테 인기 있어!"란 말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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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입장권/카드


 Port Arthur는 좋았다. 예전 호주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때 건설된 요새로 지금도 당시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입장료는 어른 25불인데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많은 것을 즐길 수 있었다. 일단 돈을 내면 예쁜 아가씨가 매우 친절한 태도로 또박또박 천천히(이거 매우 중요하다.) 설명해주며 입장권과 카드를 한장 준다. 물론 지도도 준다. 이 입장권으로 우리는 박물관, Ferry, 무료 가이드(결국 돈을 냈으니 유료인가?)를 받을 수 있다.

 입장해서 아래로 내려가면 바로 박물관이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평범한 박물관이라고 하면 곤란하다. 일단 들어가면 초입에 한 아저씨 인형이 앉아 있다. Port Arthur의 역사대로 우리는 죄수중의 하나가 되어 호주로 떠나는 영국배에 타게 되는 것이다. 아가씨가 건네준 카드에 따라 죄수의 프로필을 읽고, (난 알프레든가 뭔가 하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겪었던 것을 실제로 체험해보는 프로그램이었다. 배를 타고, 법정에 서고, 교도소에서 노역을 하는 과정을 하나하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읽어볼 수 있었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온 어린이들에게 정말로 좋은 교육 기회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