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스승의 날에 담임 선생님의 차를 포스트잇으로 덮어버린 이야기, 자기 생일날 풍선에다 카드를 넣어서 부풀린 후 교실에다 깔아주었다는 이야기를 비롯해 학교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부럽기 짝이없는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하다가 학생이 교무실에서 자기에게 질문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애들이 나한테 와서 묻는거야, '베다'와 '배다'는 왜 다르냐고 말이지."
"뭐야, 중학생이면서 그런 걸 물어?"
"아니아니, '베다'와 '배다'가 뜻이 다른 것은 알겠는데 아무리 발음 해봐도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을 굳이 다르게 표기하느냐, 가 질문의 요지였어. 그러더니 나보고 'ㅔ'와 'ㅐ'의 차이를 발음해달래. 모르겠다고."
"그래서?"
"발음 해줬지. 그래도 모르겠다는 거야. 그러면서 왜 발음도 같은 것을 굳이 다르게 표기하냐고 우기는거지. 뭐 중학생들이니까 원래 그런걸로 선생님이랑 장난치고 싶어하고 하긴 해. 그래서 실제로 소리가 다르게 나야 하는데 요즘 발음의 차이가 없어져가는 과정이다, 표기를 굳이 다르게 하는 것은 그 의미가 분명히 구별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설명을 했는데도 이해를 못하겠다는 거야."
"뭐, 어려워서 그렇겠지."
"그런데 재미있는 건 단 한마디로 애들의 입이 다물어졌다는 거지."
"뭔데?"
"그러면 왜 bed와 bad는 다르게 쓸까? 그 차이는 뭐지?"
그렇다. 아이들은 'bed'와 'bad'의 이야기에 그냥 물러갔다고 한다. 물론 선생님과 조금 더 장난치려고 온 것이겠지만 어쨌든 영어 표기는 수긍하는데 한글 표기는 납득이 안 간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쩐지 뒷맛이 씁쓸했다. 안그래도 쓴 커피가 더 쓰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국어 문법을 잘 모른다. 그러나 영어 문법은 달달 외우고 산다. 학교 문법에서 정의된 국어의 품사 종류는 몰라도 영어는 가정법의 규칙도 안다. 관계 대명사, 관계 부사 따위는 눈감고도 설명할 수 있으면서 안은 문장과 이어진 문장의 차이를 설명하라고 하면 역시 버벅댄다. 영어 형용사는 잘 알고 있지만 우리말의 형용사에 대해서는 헷갈린다. 친구가 이야기하길 수업시간에 국어의 문법적 사항은 우리말로, 우리 표현으로 열심히 설명한다고 한다. 교육적으로는 충분하다. 하지만 조금 더 많은 아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결국 영어 문법과의 비교를 끝에 넣어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이해도가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서글픈 현실이다. 자국어를 가르치는 데 남의 나라 말 사용법을 갖고 와서 설명을 해야 이해한다는 현실 말이다. 활동 위주로 꾸며놓은 현재의 국어 문법 교육은 결국 아이들로 하여금 문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사실 정서법, 문법의 경우에는 어린 시절부터 어느 정도의 암기가 함께 이루어져야 교육적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말이니까' 상관없다고 교육하다보니 지금은 우리말을 남의 말로 가르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영어몰입교육 하지 않아도 벌써부터 국어문법은 영어문법과의 비교를 통해 이해시키고 있다. 제대로 된 정서법, 문법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아이들의 글쓰기 실력이 오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로 좋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들 그 표현이 명확하지 못하고 맞춤법이 틀린 부분이 허다하면 누구도 읽기 싫어진다. (교생실습 때도, 학원에서 논술 강의할 때도 아이들이 쓴 글을 보면 한숨 밖에 나오지 않는다.)
국어학계, 국어교육계에서도 신경 쓸 일이고 현장에 나가있는 국어 선생님들도 신경써야 한다. 'bed'와 'bad'에 대한 그저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학교를 줄 세워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더 박터지게 경쟁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효과적인 교육, 중, 고등학교 졸업 후 '학교에서 뭐 배웠냐?'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는 교육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문법과는 조금 다른 문제인데, 내가 교생실습 나가서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시킨 후 다음 수업 시간에 띄운 PPT 자료 화면을 첨부한다. 맞춤법의 문제다. 물론 교실에 앉아있던 녀석들은 모두 웃고 놀리고 난리가 났으나 반 전체 아이들 중 단 한 명도 '맞춤법을 모두 맞게 쓴' 녀석은 없었다. (띄어쓰기는 바라지도 않는다.)
덧) 위 PPT화면에서 대박은 무엇일까? 그렇다. '덧음는다'다. 어쩌면 국어의 대가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 녀석이다. '덧'은 소리로 /덛/이라고 난다. 그 다음에 바로 모음이 나오므로 이것을 소리나는 대로 읽어버리면 /더듬는다/가 된다. 중세국어에서 근대국어로 넘어가던 시기에 나온 표기법과 유사하다. 그저 놀라운 녀석이다-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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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서 웃었는데 다 읽고 나니 뭔가 씁쓸해지네요.-_-;;
개인적으로 가장 큰 원인이 인터넷에 있다고 봅니다.
무분별한 국어파괴에 앞장서면서 좋아하는 일부 연예인들도 문제구요..
글로발, 말로손시대에 묻혀 케케묵은 것으로 치부되는
소중한 우리 국어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뭥미? ~했삼, 등등 따라했던 제 자신도 부끄러워지는군요.
( _ _)-
freesopher
2008/08/09 14:44부끄러워 마세요 Krang님! 저도 재미삼아 따라합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우리 한글이 워낙 뛰어나다보니 갖가지 표현을 그대로 적을 수 있어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겠지요. 너무 심하지 않으면 언어가 갖고 있는 창조성의 발현이라 생각하여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합니다. 문제는 제대로된 문법, 맞춤법 교육이 뒷받침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기에 '국어파괴현상'이라는 슬픈 말이 만들어진 것이겠지요.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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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쑤
2008/08/09 21:36베다와 배다 의 발음구분에 대해 어떤 아나운서 분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어요. (연수에서ㅋㅋ)
ㅔ보다 ㅐ가 입이 더 크게 벌어지게 되는 것을 이용하여 ㅔ는 손가락 하나, ㅐ는 손가락 둘을 이 사이에 끼우고 발음하면
발음이 약간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하네요. 해보면 약간 달라요~
의식적으로 발음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그 아나운서 분은 강조하여 말씀하셨다는...
애들한테 이렇게 알려주면 재밌어 하긴 해요. 이 사이에 선생님이 손가락 끼우고 막 발음하니깐. ㅋㅋ ;;;; -
Krang님 말씀대로 재미있게만 읽기에는 씁쓸하네요. 다 큰 어른인 저도 사실 우리말 문법이나 철자, 띄어쓰기가
틀리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제 사례를 들어 아이들만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해도 실례는 안될지요^^
이어서 친구와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영어 몰입식 교육으로 이어졌을 법 한데 그렇지 않나요? 그렇다면
대화 내용 계속 소개해 주시길^^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freesopher
2008/08/11 08:14그렇죠. 그것은 컴속의 나님의 문제라기보다는 역시 우리 교육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또 국어학계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국어 정서법 연구>라는 어처구니없이 두꺼운 책을 쓴 저희 과 민현식 교수도 책에서 스스로 '국어과 교수들마저도 띄어쓰기가 틀린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니까요;;;
언젠가 영어를 가르친다, 또 영어를 배운다는 것에 대해서 제 입장을 한 번 정리해보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만 역시 언어학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여(학부시절 전공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죠-_-a) 정리하기가 힘드네요^^;;
잘 읽어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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