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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낙심할 필요는 없다.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보고, 생각하고, 그 결과물을 소통하는 데 있어서 항상 당당하고 싶다.
 
Don't Feel Sorry For Your..
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산다는 것은
다시 글로 표현하는
무작정 가다보면
잊으면 안되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득채의 I AM A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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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04 마초 소릴 들어도 남자이고 싶을 때가 있다 - 오우삼, <영웅본색>
  2. 2008/07/29 음악이 주는 강박관념, "뭐든 해라!" - 존 카니, <원스(원제: Once)>
  3. 2008/07/21 단편소설 같은 그녀의 성장 드라마 - 아일레트 메나헤미, <누들(원제: Noodle)>
  4. 2008/07/17 8월, 기대되는 영화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5. 2008/07/16 그래도 하편을 보겠다 - 오우삼,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
  6. 2008/07/13 "쟈는 남자가, 여자가?" / "으음... 엄마... 그건..."
  7. 2008/07/01 전쟁, 그리고 여성에 대한 이야기 - <님은 먼곳에> 제작 보고회
  8. 2008/06/12 삼류인생이야말로 진정한 삶이요, 죽음이다. - 송능한, <넘버 3>
  9. 2008/05/19 영화의 탄생
  10. 2008/05/16 그것은 집착이다 - 샘 페킨파, <알프레도 가르시아의 목을 가져와라(원제: Bring me the head of Alfredo Garcia)>

  ON20에서 주최한 시사회에 당첨되어 <영웅본색>을 봤다. 1987년 개봉작이니 벌써 20여년이 지난 작품이다. 사실 홍콩 느와르의 아버지 중의 아버지쯤 되는 영화라 영화에 대해서 나 따위가 왈가왈부 한다는 것이 우스울 정도다. 아마 구글에서 '영웅본색'이라는 네글자로 검색하면 수백만개의 페이지가 나올 것이며 그 중 수만개가 영화 <영웅본색>의 리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만 쓰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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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에 재개봉하는 <영웅본색>


  사실 추억을 떠올리며 <영웅본색>을 보았다고 하기엔 문제가 있다. 1987년 개봉 당시에는 무려 6살이었고, 내가 이 영화를 본 것은 초등학교 시절 비디오가 있는 '잘 사는' 친구네 집에서 본 것이 전부이기에 단편적인 이미지만 남아있을 뿐 내용 따위를 기억할 수 있을 리 없다. 실제로 주윤발이 이쑤시개를 씹고 있었는지 성냥을 씹고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머리가 굵어져서 실제로 본 <영웅본색>은 정말 남자를 위한 영화였다. 마초 소릴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남자들을 위해 만든 영화였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작렬하는 코트와 총과 피와 담배의 미학은 한국땅에서 '남자'라는 것을 신주단지 마냥 모시고 사는 남자들에게 제대로 어필할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8년씩이나 되는 시대에 보고 앉아 있기엔 어딘지 모르게 부끄러운(?) 대사들과 어색한 연기들, 과장된 표정, 한방에 픽픽 쓰러지는 나쁜 놈(?)과 몇 방을 맞아도 죽지 않는 불사신 주인공 때문에 영화관 곳곳에서 실소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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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란!


  그러나 장국영(오랜만입니다, 형님ㅠ 보고 싶어요!)의 머리를 쥔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형제'라는 것을 논하던 주윤발의 마빡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순간에는 20년이나 지난 데다 내용을 다 알고 보는 관객들의 입에서도 탄성이 흘러나온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관객을 이렇게 감정이입 시켜놓고 머리에 구멍을 내는 센스는 대체 어디서 배워먹은 것인가?

  오우삼 네 이 녀석.

  스토리는 그야말로 진부함의 극치였다. 하지만 이 스토리가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이후 만들어진 수백편의 영화에서 오마주되고 또 오마주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지금 읽으며 그 치졸한 상상력을 비웃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옛날 영화가 지금도 신선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두가지 이유다. 감히 누구도 따라할 수 없을 만큼 잘 만든 작품이거나(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는 컷분할까지 똑같이 해도 원작이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니면 너무 재미없어서 굳이 재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영웅본색>이 진부한 이유는 그 스토리를 몇번이고 우려먹어도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형의 끝간데 없는 사랑과 이해하지 못하는 동생, 친구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우정, 조폭의 세계에서도 끝까지 지키려하는 의리, 친구의 등을 치는 비정한 악당, 그 악당에 대한 피의 복수 등 도대체 요즘 한국영화에서도 안 써먹는 것이 없을만큼 <영웅본색>은 총 들고 남자들이 싸우는 영화의 기본을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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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담뱃불을 붙여보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 때로는 마초 소릴 들어도 남자 놀이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괜히 폼도 한 번 잡아보고 싶고, 센 척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사실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것이 훨씬 익숙하면서도 상대방에게 개겨보고 싶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 무협지를 엄청나게 많이 읽었다. 김용, 검궁인, 사마달(후에 신운으로 필명을 바꾼 적이 있다), 서효원, 좌백, 용대운, 야설록, 와룡강(이 사람은.... 좀....) 등이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지배했던 사람들이다. 대학에 들어가 무협지를 다시 읽은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공부도 내팽겨친 채 그렇게 열심히 읽어댔는데 정작 시간이 남아서 책이나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 때는 당기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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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무협지 주인공보다 멋지다


  생각해보면 내가 고등학교 때 무협지를 그렇게 읽었던 이유가 진짜 '대리만족'이었던 것 같다. 강호의 영웅호걸들과 겨루며 싸우다 어디 산골짜기에 떨어져서 기연을 만나 내공을 순식간에 몇갑자를 올리고 환골탈태하여 수많은 미녀들을 거느리고 무림의 최강자가 되어가는 주인공을 보면서 나를 거기에 대입시켰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에 붙잡혀 아이스 하키채로 엄청나게 맞아가며 공부를 하던 고등학교 시절, 나는 언제나 '무력감'을 느꼈다. 강고하게 짜여진 시스템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가난한 집 자식이 대학에 가려면 학교에서 맞아가며 보충수업을 하고 야자를 하는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라의 꼭대기에서부터 우리집 구석까지 제대로 짜여진 시스템 앞에 나는 강의석 군처럼 일인시위조차 할 용기도 없는 나약한 인간이었기에 무력감을 느끼며 고등학교 3년을 '진' 채로 보냈다.

  그런 무력감이 나로 하여금 허황되기 짝이 없는 무협지의 세계로 인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영화 <영웅본색>을 보고 열광하지는 않더라도 고개를 끄덕이고, 극장 밖으로 나와 담배를 빼어물며 같이 영화를 본 친구 녀석에게 "역시 남자는 코트와 총이야!"를 내뱉는 내가 느끼는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의리에 목숨을 걸고 있는 주윤발과 적룡의 모습은 그야말로 마초의 전형이다. 그들에게 여성은 안중에도 없다. 아예 처음부터 인생에서 고려하지 않는 대상이다. 부드러운(?) 이미지의 장국영도 후에 가서는 자신의 형, 적룡과 그 친구 주윤발과 닮아간다. <영웅본색>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남자, 아니 영웅이 되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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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장국영이 '남자'가 되는 증거는 역시 담배다


  고등학교 때 느꼈던 튼튼한 시스템이 졸업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다시 느껴진다. 나는 다시 한국이라는 거대한 사회가 갖고 있는 시스템에 무릎을 꿇을 것만 같다. 신문, 뉴스, 인터넷 상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어처구니 없는 소식들에 나는 "남자"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겨우 <영웅본색>을 보고 나와 담배를 물며 '이걸 이해하니 나도 남자로군.' 따위의 생각을 하는 것으로라도 자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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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보고 내가 다시 한번 이 사회의 '시스템'을 느낀거다. 웃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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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웅본색(英雄本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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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LIVey
    2008/08/05 16:02
    윽... 저랑은 관점이 다르시네요(사실 그것보단 글의 수준차이가...OTL)
    요새 글이 너무 안써져서 아무나 붙잡고 벤치마킹이나 해야겠어요ㅠㅠ
    • BlogIcon freesopher
      2008/08/05 17:45

      글이 참... 너무 하죠... 쩝...;;; 저도 요즘 글이 잘 나오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그래서... 더 많이 쓰죠-_-a 자꾸 써봐야 는다, 라는게 어쨌든 지론인지라...

  2. BlogIcon 컴속의 나
    2008/08/10 13:37
    영웅 본색이 그렇게 깊은 의미와 사연이......
    그 당시 영웅본색 바람이 강하긴 강했죠.
    나 같이 영화관과 거리가 먼 인간도
    극장으로 불러 낼 정도였으니까요^^

    저도 벤치마킹 해야겠어요.
    글도 안서질 뿐더러 정서도 메말라 버려서요~~^^
    • BlogIcon freesopher
      2008/08/10 14:46

      영화를 보고 떠오른 짧은 생각일 뿐이죠^^;;
      그때 극장에서 보셨다면, 컴속의 나님은...
      제겐 심히 큰형님? :)



  그와 그녀.

  음악으로 소통하고, 음악으로 사랑하는 그와 그녀.

  영화 <원스>는 음악이 함께 할 때, 둘은 역시 함께일 수 있으나 삶이 함께 할 때 자신들의 사랑을 되찾으려 하는 그와 그녀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로 영화에서 그(글렌 한사드 분)와 그녀(마르케다 이글로바 분)은 이름이 없다. 마지막에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에서도 "Guy"와 "Girl"이라 나온다. 엄청나게 음악을 잘하는 아마추어 뮤지션이기는 하나 다른 부분에서는 그저 그런 아일랜드판 갑남을녀이기에 딱히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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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카니, <원스>


  영화의 음악이라 불러야 할지 음악의 영화라 불러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원래 영화음악은 별개로서도 충분히 자기의 능력을 다 한다.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 <원스>의 음악이 좋다는 이야기를 먼저 들었다. 물론 나는 음악을 들어보지는 않았는데, 영화를 보기 전에 OST부터 접한 사람들의 평은 하나같이, "흠. 좋은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좋다고 난리치는지 이해가 가지는 않아."였다.

  <원스>를 보고 나면 그 이유가 십분 이해가 간다. 이 영화와 음악은 샴쌍둥이와 같다. 둘은 별개이면서 별개일 수 없다. 영화를 영화로서 즐길 수도 있고, 음악을 음악으로서 즐길 수도 있지만 이 둘을 떼어놓으면 필연적으로 죽음에 이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나 음악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모두 내보이지 못하면 곧 죽은 것이다. 둘은 함께 있을 때 최고의 빛을 발하기에 떨어져 나왔을 경우 오히려 혹평을 받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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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을 이따위(?)로 찍는 센스는 정말 경이롭다!


  나는 음악보다 영화에 익숙한 사람이다. 그래서 영화 쪽에서 할 말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영화의 내용은 그야말로 단순하다. 스포일러랄 것도 없다. 사실 포털에서 소개하고 있는 영화의 줄거리가 전부다. 두 남녀의 '인물 설정'이 하나 둘 씩 밝혀져 나가는 과정이다. 사실 '그'는 어떤 사람이었고, 사실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다, 가 전부다. 둘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다시 옛 연인, 그리고 남편에게 돌아간다. 돌아간다기보다는 사랑을 되찾게 된다고 하는 것이 더 옳겠다. 잊으려고도 해보았고, 떠나려고도 해보았지만 무엇 하나 되는 것은 없다. '그'의 노래는 10년전 자신을 버리고 떠난 옛 연인을 잊은 채로는 만들어 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그녀'가 잘 알고 있다.

  제목 <원스>는 사실 감독의 표현에 의하면 'if'와 같은 뜻이다. 만약 내가 돈이 많다면, 만약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다면, 하는 말만 내뱉을 줄 알지 무엇 하나 직접 부딪쳐 보는 일이 없는 아일랜드 젊은이들을 향한 말이란다. 그런 사실은 전혀 알지 못한 채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영화가 끝나면서 내 머릿 속에서 맴도는 것이 있었다.

  "뭐든지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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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라도?


  거창한 스토리도, 가슴 아픈 사랑도, 두근거리는 액션도, 진한 러브신도 없건만 영화가 끝나갈수록 내 머릿속은 위의 말로 가득 찼다. 그저 흘러가는 영화를 보면서 내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였으면 애들이 벌떡벌떡 책상 위로 뛰어올라가는 장면을 '핑계'로 댈 텐데, 이 영화는 그런 '대단한' 장면 하나 없이 사람의 마음 속을 건드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음악인가?

  영화 내내 흐르는 음악은 언제나 그와 그녀의 것이었다. 언제나 그들의 '생라이브'로 나오는 음악들이었다. 상황에 노래가 깔려야 하면 그냥 그들이 불렀다. 자신의 입으로 노래를 하지 않는 순간에 음악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건 말 그대로 영화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의 '음악'은 주인공들의 삶과 맞닿아 있는 '노래'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그들이 부르는 모든 노래에서 마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반전 부분이나 최루성 멜로 한국 영화의 엔딩씬에서 느낀 손 끝까지 찌릿찌릿하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이유였던 것이다.

  내가 하지 않는 노래가 내 주변에 깔릴 리는 현실 세계에서는 결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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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하란 말이다


  오랜만에 실컷 노래를 부르고 싶기도 했고, 몇 년 째 제대로 잡아본 적도 없는 기타를 쳐보고 싶기도 했다. 몇 번 공모전에 떨어진 후 하드디스크 한 구석에 고이 모셔둔 소설을 다시 써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누군가를 진하게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잔잔하기 그지 없는 스토리 라인을 가진 영화로부터 강박관념을 느끼다니,

  자존심 상한다.

덧) 본 영화는 동숭아트센터 하이퍼텍나다에서 '넥스트플러스 여름영화축제 (2008 NEXT PLUS SUMMER FILM FESTIVAL)'의 상영작이다. 이 행사는 8월 7일까지 계속 된다. 영화 <원스>는 내일까지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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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kwangsub
    2008/07/30 15:21
    이 영화에 푹빠졌지요~ 요즘도 자주 듣는 음악중에 이 OST가 들어있으니까요~ Girl, Guy.. 이건 몰랐네요 이름의 의미보다 느낌으로 다가오는 의미가 더 컸던 그런영화였지요~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freesopher
      2008/07/30 15:59

      어제 서태지 형님의 새 앨범을 두장이나 질러버려 자금의 압박으로 인해 OST를 사고 싶었음에도 그냥 포기했다죠? ㅜ_ㅠ 들러주셔서 감사!

  2. 김기영
    2008/08/16 17:59
    글렌 한사드는 아일랜드에서 꽤 유명한 메이저 밴드 리드싱어이고
    여자또한 실제 글렌한사드의 여자친구.
    등장인물들 모두 지인들로 구성된 출연진은
    어느정도 리얼라이프를 배경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거 같더라.
    • BlogIcon freesopher
      2008/08/18 14:29

      지인 정도가 아니라 밴드 멤버가 감독을 했다구.

      뭐, 글렌과 마르케타는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러브(이걸 러브로 불러도 될까)스토리를
      엮었던 적이 있다더군.

      친한 친구이자 친한 뮤지션 어쩐지 굳?



  단편소설은 어느 구절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시에 가까운 소설이다. 감탄사를 하나 넣더라도, 마침표를 하나 찍더라도 소설가는 많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린다. 수많은 인물 설정과 배경, 긴 내용에도 불구하고 독자가 이탈할 수 없도록 완벽한 세계를 창조해야 하는 장편소설과 분명히 다르다. 단편소설은 짧기에 긴 여운을 남길 수 있도록 해야한다. 글자 하나, 방점 하나가 예술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단편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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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의 언론 시사회에 다녀왔다


  영화 <누들>은 그런 단편소설과 같은 영화였다. 긴박감 넘치는 전개, 화려한 영상미를 앞세운 장편소설과도 같은 영화가 아니라 배우들의 대사 한마디, 살짝 미소짓는 모습과 보이지 않는 행동이 영화를 이루는 단편소설과 같은 것이었다. 미리(밀리 아비탈 분)의 언니 길라(아낫 왁스만 분)의 '비꼬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사들과 누들(영화 속 이름: 리위, 바오치 첸 분)의 미소는 이미 그것으로 영화를 완성하고 있었다.

  <누들>은 성장 드라마다. 그러나 성장하는 주체는 여섯 살짜리 꼬마 누들이 아니다. 강제출국 당해버린 누들의 어머니 탓에 엉겁결에(?) 누들을 맡게 된 서른 살 넘은 과부 미리다. 그녀를 둘러싼 환경은 결코 녹녹지 않다. 스튜어디스라는 멋진 직업과 눈부신 외모는 특별히 그녀의 외부 환경을 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녀의 내부는 다르다.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첫 남편, 그리고 비행기 사고로 보내야했던 둘째 남편을 가슴에 묻어두고 있다. 게다가 그녀를 좋아하는 형부 덕에 언니에게도 늘 '비꼬기'로 공격당해야 한다. 더 이상의 사랑은 꿈꾸지 않는다. 어디에도 그녀가 마음을 편하게 뉘일 곳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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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없는 틈을 타 밖으로 도망나온 누들


  꼬마 누들은 그런 그녀를 바꾸어나간다. 그러나 그것은 누들의 '자의'가 아니다. 누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 둘러쌓인 여섯 살짜리 중국인 아이가 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울고, 소리 지르고, 도망친다. 길라나 그녀의 딸에게 히브리어를 배우지만 그것을 열심히 할 생각도 없다. 그의 머릿속에는 빨리 엄마를 만나고 싶은 마음 뿐이다. 어찌보면 야속할 정도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애정을 쏟고 있으나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어설픈 헐리웃 영화에서라면 누들이 미리를 감동시킬만한 이벤트(?) 따위를 한다거나 미리와 헤어지는 것이 싫어 울면서 사람들의 눈물을 쥐어짜내려 했겠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진짜 중국인 꼬마애가 나오는 영화다.

  성장은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변화다. 일종의 진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힘든 일을 겪고,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둘러싸인 미리는 그런 누들과 함께 변화해 나간다. 그녀는 말도 통하지 않는 누들과 이야기한다.

누들: 이 사람은 누구야?
미리: 내 남편. 군인.
누들: 어디갔어?
미리: (총 쏘는 시늉) 죽었어.
누들: (고개를 떨구며) 오.....

누들: 이 사람은 누구야?
미리: 내 남편. 파일럿.
누들: 어디갔어?
미리: (비행기가 추락하는 시늉) 죽었어.
누들: (고개를 떨구며) 오.....

누들: 미리, 아이 없어? (No baby?)
미리: 없어.
누들: (고개를 떨구며) 오.....

  짧디 짧은 영어와 중국어, 온갖 바디랭귀지를 섞어서 나누는 이 대화에서 미리는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옴을 느끼며 눈물을 흘린다. 여섯 살짜리 꼬마와의 대화에서, 게다가 자기 마음 속에 있는 말들을 모두 털어놓을 수 없는 그런 대화에서 그녀는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것이다. 미리의 깨달음은 껍질의 파괴다. 마음 속에 꽁꽁 숨겨두었던 사랑을 다시 꺼내야 하기에 가슴이 한번 아파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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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변화는 수천 수만가지 말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 누구도 그녀에게 진심어린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는다. 길라는 미리에게 독설을 퍼부을 줄 알지만 진심어린 대화를 나누지는 못한다. 그녀를 사랑하는 형부 역시 누들을 중국으로 데리고 가는 그 시점에서 망설이는 미리에게 다가가, 그제서야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누들의 중국행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마티 역시 그와 길라와의 관계에 대해 미리에게 털어놓지 못한다. 누구도 미리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이 없다. 그것이 현대의 인간관계다.

  그러나 누들은 짧은 감탄사 '오....'를 통해 그녀의 아픔을 여섯 살이지만 통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많은 말이 필요없다. 누들은 그야말로 '아이'이기에 그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곧 진정으로 마음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미리는 잘 알고 있다. 아이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누들이기에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나홀로 집에>에서 도둑을 때려잡는 꼬마와는 분명히 달라서, 누들은 미리를 치유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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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에 보내면서 웃을 수 있다


  사랑을 깨달은 미리는, 그리고 누들을 사랑하게된 미리는 그를 떠나보낸다. 직업을 잃게 될 위험도, 어쩌면 감옥에 갇히게 될 위험도 감수한 채 미리는 누들의 이스라엘 탈출(?)을 감행한다. 무모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이 방법은 그녀가 누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다. 자신의 마음을 열어준 동양의 작은 꼬마를 떠나보내기가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해야만 한다. 사랑하는 대상이 원하는 최고의 것을 찾아주는 것이 사랑을 깨달은 그녀가 해야할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진심으로 대하는 아이를 통해 다시 사랑을 깨닫게 되는 미리의 모습은 어쩌면 적당한 립서비스로 모든 인간 관계를 처리하는 현대인들에게 커다란 의미를 준다. 도대체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안절부절 못 하던 그녀의 모습과 캐리어에 손을 집어 넣어 누들의 손을 꼭 잡아주는 그녀의 모습은 인간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가를 느끼게 한다. 눈물이 나는 부분은 그것이 너무 따뜻해서이다. 그 손을 우리가 만져볼 수 없지만 두 사람의 악수가 얼마나 따뜻한지 느낄 수 있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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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 역의 바오치 첸


덧) 이 영화의 미덕은 이런 따뜻한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밀리 아비탈의 눈부신 외모, 아낫 왁스만의 제대로 된 비꼬기 대사(센스가 만점이다!), 그리고 처음엔 그다지 귀여워보이지 않았는데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가는, 그야말로 평범한 이웃집 꼬마애같이 생긴 바오치 첸의 모습은 100분짜리 깔끔한 러닝타임의 영화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흡입력을 제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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