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스스로에게 낙심할 필요는 없다.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보고, 생각하고, 그 결과물을 소통하는 데 있어서 항상 당당하고 싶다.
 
Don't Feel Sorry For Your..
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산다는 것은
다시 글로 표현하는
무작정 가다보면
잊으면 안되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득채의 I AM A ROCK
     
«   2008/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35  [위대했던 그들, 더 후 특집1] The Who "..
/334  [8월 17일 오후] 일본인 아버지, 일본인..
/333  [8월 16일 저녁] 기노쿠니야 서점에서 본..
/332  [8월 16일 오후] 메이지 신궁에서 생각한..
/331  초대장 보내드립니다
/330  티스토리 초대장 배포합니다
/329  칵테일 쇼 하면 생각나는 노래 - Georgia..
     
2008/08 - 26
2008/07 - 38
2008/06 - 36
2008/05 - 28
2008/04 - 11
2008/03 - 9
2008/02 - 1
website counter
Total 216,462, yesterday 681, today 94
powered by Tatter tools, designed by kokoro studio.
  

한RSS로 구독하세요!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1. 2008/07/25 우리는 우리들대로 즐기면 된다 - 무라카미 하루키, <밤의 거미원숭이>
  2. 2008/06/27 삶에도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3. 2008/06/23 당신은 책을 어떻게 읽는가?
  4. 2008/05/18 우리의 현실은 이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 무라카미 하루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5. 2008/04/15 나는 왜 그를 읽는가
  6. 2007/06/01 Paul Auster, <Brooklyn Follies> 폴 오스터, <브루클린 풍자극>
  7. 2007/06/01 Haruki Murakami, <Norwegian Wood>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는 우리들대로 즐기고, 들쥐는 들쥐 나름대로 재미있게 살면 되지 않을까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밤의 거미원숭이>는 소설(小說)이다. 문자 그대로 짧은 글이라 보면 되겠다. 각각의 글들은 모두 소설의 성격을 띄고 있으나 그 분량이 현저히 적어 민망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하루키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을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짧은 단편(이라는 것도 이상한 표현이지만, 달리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은, 사실은 잡지에 광고 시리즈로 쓰인 것이다.

  36편의 단편은 핸드북 크기의 책에 2~3 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실려 있다. 신문 광고 시리즈였으니 글의 내용이 길 리 없다. 각각의 글은 완결된 구조를 갖고 있는 이야기 형식도 있고, 뜬금없는 독백체의 형식을 취한 것도 있다. 앞에서 등장했던 인물, 예를 들면 와타나베 노보루, 가 다시 등장하는 글도 있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무관한 내용의 글도 있다. 기상천외한 내용도 있고,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내용도 있다. 이 모든 작품을 묶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우습게도 36개의 단편이 전혀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광고 시리즈로 사용되었다고는 하나 광고 내용과는 전혀 무관한 글 뿐이다. 몇 가지 뺀 작품도 있고, 책으로 편집하면서 두 작품정도 들어가기는 했으나 일관성이 없는 내용들이라는 점에서 어떻게 광고로 사용되었는지 의문스럽다.

  글은 오랜만에 하루키스럽다고 하겠다. 1995년에 일본에서 출간된 책(한국은 1996년)이니 예전 그의 냄새가 물씬 나는 글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좋다. <태엽감는 새>를 쓸 무렵에 한 달에 한 편씩 광고용(전혀 광고와 무관하지만)으로 썼다. <태엽감는 새>라면 하루키적 글쓰기가 최고로 빛을 발할 때 완성된 대작(?)이 아닌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매력 중 하나는 그의 묘한 서사 방식일 것이다. 우리는 문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낯설게 하기', 중학교 때 배운다, 를 꼽는다. 원래 '낯설게 하기'라는 것은 러시아에서 완성된 개념인데, 항상 경험하기 때문에 일상화되어 익숙해져 버린 사물 혹은 관념을 낯설게 느끼게하여 새로운 느낌을 이끌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보는 문학작품들이 갖고 있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것은 주로 '비유'나 '상징'과 같은 수법을 통하여 나타난다.

  '비유' 혹은 '상징'은 언제나 원관념을 가진다. 원래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 있고, 그것을 '낯설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루키는 다르다. 그가 꺼내는 사물, 관념은 마치 비유와 같아 보이는데, 마치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 같은데 그 실체가 없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나는 너무 난처해서 보초보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말야, 아까 모쇼모쇼가 우리 집에 와서 쿠랴쿠랴를 두고 갔네. 사례라고 하면서 말이야. 난 무척 곤란하다고."
  "괜찮아요, 선생님. 그런 것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보초보초가 말했다.
  "모쇼모쇼는 세무서에 대한 대책으로, 어쨌든 그걸 누군가에게 주어야만 하거든요. 받아두세요. 받아두세요. 그것 꽤 괜찮은 거라구요. 사모님께는 제가 적당히 말씀드릴게요. 눈 딱 감고 그냥 받아두세요."
  그렇게 해서, 나는 지금 쿠랴쿠랴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사용해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다. 이제는 손에서 놓지 못할 것 같다.

  언뜻 보았을 때 쿠랴쿠랴는 '돈'인 것 같다. 그러나 곰곰히 읽어보면 쿠랴쿠랴라는 것이 다른 것이 되어도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사용한다는 것이 뭘까? 돈을 사용한다, 고 하니까 어쩐지 어감이 이상하다. 그렇다면 보초보초는 누구를 의미하며 모쇼모쇼는 누구를 의미하는가? 쓸데없이 머리를 굴려봐야 남는 것이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돈을 사용한다'는 것은 이런 느낌일까?


  이런 것이 하루키의 문학이다. 그가 쓴 장편 소설들은 허황되고, 환상적인 것 같아 보이면서도 상당히 짜임새있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 치밀한 복선도 깔려 있다. 그러나 그것들 하나하나가 모두 실체와 맞닿은 상징이나 비유가 아니기에 어처구니 없어 보인다. 내용이 없어 보이고, 깊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매력으로 꼽는다.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는 일상에서 벗어난,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해보기 위해서다. (이것을 문학의 '간접체험'이라고 한다.) 하루키의 문학은 그런 점에서 매력이 있다. 누구도 미리 정해놓은 것 같지 않은, 우리를 둘러싼 갖가지 현상에 이끌려가는 우리네 삶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운명은 있을 것 같이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까? 삶이 마치 비유나 상징으로 가득차 있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과 유사하다.

  그렇게, <밤의 거미원숭이>를 읽었다. 추천할 만한 대단한 책은 아니고, 심심할 때 읽으면서 입가에 간간히 미소를 지을 만한 그런 책이다. 여름, 일주일째 지겹게 비도 오는데 조용한 카페에 앉아 커피 하나 시켜 놓고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2시간이면 족하다. 하루키의 '의미없는' 글과 안자이 미즈마루의 '어처구니없는' 그림과 함께 말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http://freesopher.tistory.com/trackback/298
  1. BlogIcon LIVey
    2008/07/27 00:18
    엄청나게 짧은 책이군요+_+ 하루키의 소설을 하나도 읽어본 적이 없는 교양없는 본인은 태엽감는새 부터 읽어봐야겠습니다;;;
    • BlogIcon freesopher
      2008/07/27 00:47

      흠. <태엽감는새>부터 읽으시면 바로 질리실 듯. 무려 4권짜리 소설이거든요ㅡ,.ㅡ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1973년의 핀볼> → <양을 쫓는 모험> → <댄스댄스댄스> 의 테크트리를 추천합니다. 간간히 서브 이벤트로 단편집들을 읽어주면 굳!



  초등학교 수업 시간은 40분, 중학교 수업 시간은 45분, 고등학교 수업 시간은 50분이다. 대학은 2학점, 3학점 등 학점에 따라 한번에 소화해내야 할 수업 시간이 정해지지만 대략 1시간 30분 정도 하면 쉬는 시간을 갖는다. 쉬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이유는, 특히 학업을 하는데 있어서, 위에서 정해 놓은 시간을 넘어버리면 그 연령대의 평균적인 학생들이 집중력을 지속시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냥 앉아 쉬는 것만이 쉬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출처: http://blufins.com)


  나도 쉬는 시간이다. 2월에 귀국하여 2주 정도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을 뵙고, 친구들을 만나고, 복학 준비를 하고, 일자리를 구하고, 방을 구했던 시간을 제외하면 정신없이 달려왔다. 교생 실습을 나가는 4학년 1학기에 무려 21학점을 신청해놓고 저녁마다 6시간씩 일을 하면서 수업-교생-과제-시험 등을 거쳤다. 내가 내 나름대로 쓸 수 있었던 시간은 그 와중에도 한번씩 만났던 친구들과의 간단한 술자리나 밤 12시에 퇴근하여 하루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면서 단견이나마 블로그에 글을 쓸 때 뿐이었던 것 같다.

  지지난주에 종강을 했다.

  그리고 2주째 쉬는 시간을 갖고 있다. 물론 취업 준비를 해야하니 TEPS책도 사고, 한자능력검정 책도 샀다. 이틀정도 학교 도서관에 앉아 공부하는 척(?) 해보기도 했으나 쉬는 시간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공부에만 쉬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숨쉴 틈도 없이 한 학기를 달려왔더니 삶에 대한 집중력도 떨어지는 것 같다. 종강 이후 바로 무엇인가를 시작하려고 했던 것이 오히려 역효과다. 내가 하려고 했던 것에서부터 자꾸 멀어지는 것을 느낀다. 책도 읽고, 음악도 좀 듣고, 하는 여유라도 가졌으면 괜찮았을 텐데 도무지 쉽지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조금 여유로워져서인지 아주 대학생스럽게(이 얼마만의 대학생인가!) 종강 후 술자리도 잡히고, 약속도 생긴다. 슬쩍 빠지고 내가 해야할(!) 공부를 해도 되건만 쉽지 않다. 역시 쉬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였을게다. 사람들과 만나 사는 이야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는 것이 그리웠던 것 같다. (물론 그러다보니 어제는 일을 마치고 12시에 퇴근해서 집에서 완전히 뻗어버렸지만 말이다.)

  7월이 되면 다시 오전에는 학교에 나가서 공부하고 오후에는 일을 하는 일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자유롭게, 즐기면서 산다는 것도 물론 좋고, 모두가 원하는 것이지만 취업을 앞둔 대학교 4학년생에게는 나태요, 태만이다. 내 인생에 대해서는 직무유기요, 책임방기다.

  하지만 열심히 살았으니 2주 정도는 슬쩍 쉬어도 되지 않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대로 쉬는 거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http://freesopher.tistory.com/trackback/261

  1. 2008/06/27 15:35
    비밀댓글 입니다
  2. BlogIcon LIVey
    2008/06/30 17:12
    저는 너무 많이셔서 문제라는;;;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출판사 입사를 준비하는 후배는 "책이라는 매체 그 자체가 좋다."는 말을 내게 했다. 그에 비해 나는 매체가 갖고 있는 외적 특성보다는 책이라는 것이 담고 있는 내용을 더욱 좋아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등한시(?)한 경향이 있기에 "공부"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책읽기를 스스로에게 강요하는 일도 벌이는 중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생각보다 이 사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다. (redttack님 감사합니다^^)


  세상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무척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지하철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다. 물론 DMB나 PMP 등을 보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예상외로 책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책을 읽는 방법은 모두 제각각인 것 같다. 이는 책 뿐만이 아니라 글 한 편을 읽는 방법도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원에서 언어영역을 강의하다보면 비문학 제재에 대하여 아이들마다 각기 다른 방법으로 읽는 모습을 보는 경우가 많다. 학원 강사라면 "어떻게 읽어야 한다"라는 것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아이들마다 읽는 방법이 다름에도 내용을 이해하는 수준에 있어서는 비슷한 경우가 많기에, 혹은 바람직한 방법이라 보이는데도 오히려 이해도에서는 대충 읽는 것 같아 보이는 아이보다 못한 경우가 있기에 세상에 정도가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래서 내가 책을 어떻게 읽는지 한번 생각해보았다.

  나는 문학, 특히 소설(개인적으로 시는 읽지 않는다.)을 읽을 때와 인문, 사회과학 서적을 읽을 때 그 방법이 확연히 다르다. 먼저 소설을 읽을 때 내 책은 과연 이 사람이 책을 읽고 있나 싶을 정도로 깨끗하다. 책갈피를 끼워가며 읽어 책을 접은 자국조차 남기지 않는다. 좋아하는, 마음에 드는 구절이 나와도 표시하지 않는다. 그냥 읽고 지나간다. 이러다보니 나중에 감상문을 쓰거나 블로그에 책에 대해서 올릴 때 다시 책 전체를 뒤져서 그 구절을 찾아야 하는 수고를 겪기도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폴 오스터, <환상의 책> : 산지 3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깨끗하다.


  소설을 이렇게 읽는 이유는 아마 내가 책에 빠져들어서일 것이다. 작가가 만들어놓은 세계에 들어가버린 나는, 책을 읽는 순간에 독자-소설이라는 관계를 넘어버리는 것 같다. 책을 들고 밖에서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기에, 그 속에서 주인공과 함께 생각하고 행동하기에 자신의 세계를 스스로 허무는 행위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내가 속해 있는 세상을 밖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힘들어진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내가 문학, 특히 소설작품에 있어서 객관적인 평가를 잘 내리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책을 책으로서 대하지 못하고, 내 앞에 펼쳐진 또다른 세상이라 생각하는 나는 감히 그 세상을 훼손하는(!) 행위를 하지 못한 채 그저 작가가 만들어준대로 따라기기만 할 뿐이라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그러다보니 독서가 끝난 후, 작품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느끼는 허무감이 더욱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세상이 생각보다 그렇게 쉽지 않다고 느껴질 때 밀려오는 현실에서 느끼는 삶의 허무와 유사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반해 인문/사회과학, 철학 등의 책을 읽을 때는 다르다. 읽다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장에는 모조리 밑줄이 들어가고, 의문이 나는 것은 메모가 된다. 사실 이런 류의 책을 친구들에게 쉽게 빌려주지 못하는 이유도 워낙 지저분(?)하기도 하거니와 나의 짧디짧은 생각이 책에 너저분하게 늘어놓이기에 그렇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진경, <철학과 굴뚝청소부>


  이 책은 '철학'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군 시절에 읽은 것이다. 일종의 입문서 격이라고 보면 되는데, 근대 철학에서부터 탈근대(혹은 포스트모던) 철학으로의 이행을 나름대로 쉽게 풀이해서 쓴 것이다. 무전병 출신이라 상병 때 중계소 파견 근무가 많았다. 하루 12시간씩 근무를 서는 데, 하루에 3~4번 있는 무전 교신을 제외하고는 끝없이 무전기 앞에 앉아있어야 했기에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읽었던 것이 이 책이다. (개인적으로 철학입문서로 손색이 없는, 추천할 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누가 읽게 하고 싶지는 않다.


  오랜만에 꺼내어보니 곳곳에 밑줄이요, 글의 한 꼭지, 한 꼭지가 끝날 때마다 나름대로의 짧은 코멘트나 내용정리가 달려 있었다. 지금 읽어보면 정말 "군바리"답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사고 수준에 감히(?) 위대한 철학자들에게 짧디짧은 논리로 늘어놓은 비판들이다. (이러니 책을 남에게 빌려 줄 수가 있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치하다, 유치해!


  인문/사회 과학, 철학 등의 소위 '비문학' 책을 이런 식으로 읽게 된 것에는 대학교에 처음 입학하여 끝없이 이루어졌던 세미나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8년전 내가 입학할 때에는 학과 공부와는 별개로 신입생학교, 학회, 동아리 등에서 갖가지 주제로 다양한 세미나가 있었다. 커리집을 만들고, 읽고, 미숙하나마 발제를 해서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자리였다. 거기서 제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려면 주어진 글을 꼼꼼히 읽고 생각을 정리해보는 과정이 꼭 필요했다. 나는 학과공부를 그야말로 등한시하면서 이런 식의 공부에 열성을 보였다. (물론 그 덕에 제대해서 모조리 재수강 해야했지만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메모가 꼭지마다 주렁주렁 달려있다. (뭐냐, 저 그림은?)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식의 글읽기는 문학과는 반대의 입장에서 내가 책을 접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의 내용은 나의 무기(!)가 되어주어야 하고, 때로는 나의 공략대상(!)이 되어야 했기에 그렇다. 책을 상당히 전투적으로 읽고 어떻게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필자의 입장이 나와 맞지 않을 때는 그 허점을 찾아내 공격할 빌미를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

  물론 지금은 이런 식으로 책을 읽지 않는다. 이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하는, 약간은 부드러워진(?) 입장이다. 그러나 처음에 들인 버릇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기에 비판이나 내용정리가 달린 쪽지는 없을지라도 여전히 밑줄은 죽죽 그어지고 있으며 가끔씩 책 귀퉁이에 메모가 들어간다.

  사람마다 책을 읽는 방법도 다르고, 그 이해도도 다르며, 그 깊이도 다르고, 그 반응도 다르다. 나는 이것이 너무 좋다고 생각한다. EBS 수능 언어 영역 강의에서처럼 "비문학은 앞에다 문단 번호 달고! 중심문장에 밑줄 긋고!" 하는 식으로 모두가 그렇게 읽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더 많은 사람이 더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읽고, 그 방법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책 읽기"라는 위대한(?) 취미에 있어서 더욱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http://freesopher.tistory.com/trackback/259
  1. SO대장
    2008/06/23 19:56
    모든 책이 깨끗한 나~ㅎㅎ
    전공 책을 제외하곤 모두 깨끗하지 너와 마찬가지로~ㅎㅎㅎ
    난 심취하는 것도 그 이유중에 하나지만
    내 손이 책읽는 속도를 못 따라가는 이유도 있다.
    고등학교 때 잠시 이야기 했었지만
    책을 사진 찍어 보듯이 퍽퍽 찍어서 보다보니...
    줄 치며너서 보면 스스로에게 답답하다고 느낀다고나 할까?
    (문제는 영어 독해도 이따구로 보다보니 ㅡㅡ;; 젠장. 개판이다.)
    하이튼 독서광까지는 아니더라도 책이 없으면 화장실도 가기싫은 나을 위해
    좋은 책 하나 추천해봐라~ㅎㅎㅎ
    내 독서스타일 알지? 닥치는 대로 읽는다 ㅎㅎ
    요즘 제대로 된 책을 못 읽었더니 마음도 몸도 삭막해져가는 것 같다.ㅡ,ㅡ;;
    • BlogIcon freesopher
      2008/06/23 20:41

      이제 나이도 들었으니 무협지 그만 읽고 저 위의 "철학과 굴뚝청소부" 읽어라

  2. 빡쑤
    2008/06/23 23:20
    전.. 그런 이유로 인문사회 서적을 등한시해요.
    하나라도.. 더 머릿속에 집어넣고 기억해야 할 것 같은 압박?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흐름 따라 읽는 소설을 선호하는 이유.

    그리고 저는 책에 대한 막연한 선망은 있지만, 책을 많이 읽지는 않는다는 거..
    (ㅜㅜ 사놓은 책들과 도서관에서 훔쳐다 놓은 저 책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 BlogIcon freesopher
      2008/06/24 05:24

      음... 오빠가 잘 못 가르쳤구나ㅋㅋ 농담이고~
      그렇지. 하나라도 머릿속에 더 집어넣고 기억해야 할 것 같은 압박, 충분히 이해한다.

      압박감이라 표현했을때 그것을 좋아한다고 하는 매저키스트?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