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추억을 떠올리며 <영웅본색>을 보았다고 하기엔 문제가 있다. 1987년 개봉 당시에는 무려 6살이었고, 내가 이 영화를 본 것은 초등학교 시절 비디오가 있는 '잘 사는' 친구네 집에서 본 것이 전부이기에 단편적인 이미지만 남아있을 뿐 내용 따위를 기억할 수 있을 리 없다. 실제로 주윤발이 이쑤시개를 씹고 있었는지 성냥을 씹고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머리가 굵어져서 실제로 본 <영웅본색>은 정말 남자를 위한 영화였다. 마초 소릴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남자들을 위해 만든 영화였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작렬하는 코트와 총과 피와 담배의 미학은 한국땅에서 '남자'라는 것을 신주단지 마냥 모시고 사는 남자들에게 제대로 어필할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8년씩이나 되는 시대에 보고 앉아 있기엔 어딘지 모르게 부끄러운(?) 대사들과 어색한 연기들, 과장된 표정, 한방에 픽픽 쓰러지는 나쁜 놈(?)과 몇 방을 맞아도 죽지 않는 불사신 주인공 때문에 영화관 곳곳에서 실소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장국영(오랜만입니다, 형님ㅠ 보고 싶어요!)의 머리를 쥔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형제'라는 것을 논하던 주윤발의 마빡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순간에는 20년이나 지난 데다 내용을 다 알고 보는 관객들의 입에서도 탄성이 흘러나온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관객을 이렇게 감정이입 시켜놓고 머리에 구멍을 내는 센스는 대체 어디서 배워먹은 것인가?
오우삼 네 이 녀석.
스토리는 그야말로 진부함의 극치였다. 하지만 이 스토리가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이후 만들어진 수백편의 영화에서 오마주되고 또 오마주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지금 읽으며 그 치졸한 상상력을 비웃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옛날 영화가 지금도 신선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두가지 이유다. 감히 누구도 따라할 수 없을 만큼 잘 만든 작품이거나(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는 컷분할까지 똑같이 해도 원작이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니면 너무 재미없어서 굳이 재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영웅본색>이 진부한 이유는 그 스토리를 몇번이고 우려먹어도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형의 끝간데 없는 사랑과 이해하지 못하는 동생, 친구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우정, 조폭의 세계에서도 끝까지 지키려하는 의리, 친구의 등을 치는 비정한 악당, 그 악당에 대한 피의 복수 등 도대체 요즘 한국영화에서도 안 써먹는 것이 없을만큼 <영웅본색>은 총 들고 남자들이 싸우는 영화의 기본을 만들어버렸다.
그렇다. 때로는 마초 소릴 들어도 남자 놀이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괜히 폼도 한 번 잡아보고 싶고, 센 척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사실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것이 훨씬 익숙하면서도 상대방에게 개겨보고 싶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 무협지를 엄청나게 많이 읽었다. 김용, 검궁인, 사마달(후에 신운으로 필명을 바꾼 적이 있다), 서효원, 좌백, 용대운, 야설록, 와룡강(이 사람은.... 좀....) 등이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지배했던 사람들이다. 대학에 들어가 무협지를 다시 읽은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공부도 내팽겨친 채 그렇게 열심히 읽어댔는데 정작 시간이 남아서 책이나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 때는 당기지가 않았다.
생각해보면 내가 고등학교 때 무협지를 그렇게 읽었던 이유가 진짜 '대리만족'이었던 것 같다. 강호의 영웅호걸들과 겨루며 싸우다 어디 산골짜기에 떨어져서 기연을 만나 내공을 순식간에 몇갑자를 올리고 환골탈태하여 수많은 미녀들을 거느리고 무림의 최강자가 되어가는 주인공을 보면서 나를 거기에 대입시켰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에 붙잡혀 아이스 하키채로 엄청나게 맞아가며 공부를 하던 고등학교 시절, 나는 언제나 '무력감'을 느꼈다. 강고하게 짜여진 시스템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가난한 집 자식이 대학에 가려면 학교에서 맞아가며 보충수업을 하고 야자를 하는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라의 꼭대기에서부터 우리집 구석까지 제대로 짜여진 시스템 앞에 나는 강의석 군처럼 일인시위조차 할 용기도 없는 나약한 인간이었기에 무력감을 느끼며 고등학교 3년을 '진' 채로 보냈다.
그런 무력감이 나로 하여금 허황되기 짝이 없는 무협지의 세계로 인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영화 <영웅본색>을 보고 열광하지는 않더라도 고개를 끄덕이고, 극장 밖으로 나와 담배를 빼어물며 같이 영화를 본 친구 녀석에게 "역시 남자는 코트와 총이야!"를 내뱉는 내가 느끼는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의리에 목숨을 걸고 있는 주윤발과 적룡의 모습은 그야말로 마초의 전형이다. 그들에게 여성은 안중에도 없다. 아예 처음부터 인생에서 고려하지 않는 대상이다. 부드러운(?) 이미지의 장국영도 후에 가서는 자신의 형, 적룡과 그 친구 주윤발과 닮아간다. <영웅본색>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남자, 아니 영웅이 되어가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느꼈던 튼튼한 시스템이 졸업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다시 느껴진다. 나는 다시 한국이라는 거대한 사회가 갖고 있는 시스템에 무릎을 꿇을 것만 같다. 신문, 뉴스, 인터넷 상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어처구니 없는 소식들에 나는 "남자"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겨우 <영웅본색>을 보고 나와 담배를 물며 '이걸 이해하니 나도 남자로군.' 따위의 생각을 하는 것으로라도 자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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